<재담꾼>
조선말기 풍속화가 기산 김준근의 그림 ‘소리하는 모양’. 한국학중앙연구원 제공
조선시대, 풍자를 섞어가며 익살스럽게 이야기를 풀어놓는 공연예술인 재담(才談)은 귀천을 떠나 큰 인기를 누렸다. 고담, 덕담, 신소리라고도 했다. 재담꾼은 무대 장치나 분장 없이 천의 얼굴을 연기했고, 그에 더해 구기(口技)로 이야기에 생명을 불어넣었다. 구기는 온갖 소리를 흉내 내는 기예다. 재담꾼은 조선의 스탠딩 코미디언인 셈이다.
재담꾼의 실력은 외국인도 놀라게 했다. 1883년 12월 조선을 방문한 미국의 천문학자 퍼시벌 로웰은 고종의 소개로 화계사에서 재담꾼의 공연을 관람했다. 로웰은 “배우는 단번에 호랑이로 변했다. 으르렁대는 포효는 진짜 호랑이조차 따라가지 못할 만큼 무시무시했다”고 회고했다.
‘청구야담’에는 ‘인색한 양반을 풍자한 오물음은 재담을 잘한다(諷吝客吳物音善諧)’란 이야기가 나온다. 구두쇠로 이름난 ‘종실(宗室·왕실의 인척) 노인’이 오물음(김중진)을 불렀다. 김중진은 그 앞에서 유명 자린고비 이동지가 ‘저승에는 빈손으로 간다’는 사실을 보여주고자 손을 관 밖으로 빼놓으라고 유언했던 이야기를 공연했다. 종실 노인은 깨달은 바가 있었던지 자식들에게 재산을 물려줬다고 한다.
김중진은 관중의 면면, 공연 장소, 분위기에 맞춰 이야기를 펼치면서도 세상을 풍자했고 교훈과 감동을 줬다. 조선 후기 문인 김희령은 ‘소은고(素隱稿)’에서 “입에서 나오는 대로 사연을 전개했으나 큰 진리를 비유했다”며 그의 이야기 실력을 높이 평가했다. 재담은 일제강점기 박춘재 명창이 우리 전통 소리에 녹여내 ‘재담소리’로 거듭났다.
홍현성 한국학중앙연구원 전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