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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과 놀자/피플 in 뉴스]박종철과 이한열

입력 | 2018-01-03 03:00:00


“조사관이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

1987년 1월 치안본부(지금의 경찰청) 서울 용산구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발생한 대학생 사망 사건에 대해 치안감 박처원이 발표한 내용입니다. 사망한 대학생은 당시 서울대 언어학과 2학년에 재학 중이던 박종철(사진)입니다. 고문치사를 단순 심장 쇼크사로 덮으려고 했던 은폐 시도는 머지않아 거짓으로 밝혀집니다. 이 사건은 군부 통치에 억압받던 시민들에게 저항의 기폭제가 되어 6월 민주항쟁으로 이어졌습니다.

30여 년이 흘러 지난해 말 영화 ‘1987’(장준환 감독)이 개봉됐습니다. “이런다고 세상이 달라지나요?”라고 말하던 연희(김태리 분)도 이한열의 죽음을 보고 거리로 나섭니다. ‘우리의 가장 큰 무기는 진실밖에 없다’고 말하는 김정남(설경구 분)의 말처럼 당시 시민들은 군부 정권의 거짓과 탄압에 온몸을 던져 저항했습니다. 부검을 담당했던 법의학자의 양심선언, 5공화국 정부의 보도지침을 깨고 진실을 전달한 기자들의 집요한 취재, 진실을 세상에 알리는 데 앞장선 종교인들, 시국선언문을 발표한 대학교수들, 학업을 접고 투쟁의 전면에 선 대학생과 시민들의 힘이 모여 민주화의 도도한 물결을 만들어 냈습니다. 치안감 역할을 맡은 배우 김윤석이 박종철의 고등학교 후배인 점이 흥미롭습니다.

현재 우리나라 통치 조직과 권력구조, 그리고 기본권의 근간은 1987년에 개정된 제9차 개정 헌법입니다. 당시 시민들이 요구했던 대통령 직선제가 반영됐고 선진적 기본권들이 담겨 있습니다. 국민 기본권의 최후 보루인 헌법재판소가 신설된 것도 1987년입니다. 9차 개정 헌법은 정당성 없이 등장한 군부 독재를 끝내고 민주화의 성과를 담아낸 역사적 헌법입니다.

언론 자유는 물론이고 집회 및 시위의 자유마저 제약되어 있던 서슬 퍼런 군부 정권의 압제에 맞서 싸우던 주역들을 우리는 ‘386세대’라 불렀습니다. 지금은 그들이 50대가 되었지만 자녀 세대와 함께 보는 영화 ‘1987’은 세대를 넘어 공감과 울림이 있습니다.

시민들의 대열로 가득 찬 1987년 6월의 서울광장과 광화문 거리를 영화관에서 보며 2017년 겨울 촛불을 든 시민들의 모습이 겹쳐집니다. 촛불혁명을 경험한 시민들은 민주주의는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라 일상 속에서 함께하는 영원한 가치라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2017년 촛불혁명은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를 성찰하게 한 계기였습니다. 시민이 깨어있지 못하고, 언론이 제 역할을 못하면 언제든지 민주주의는 후퇴할 수 있고 헌법조차도 박제화될 수 있다는 교훈을 체감했습니다. 1987년 헌법으로 탄생한 헌법재판소가 민주주의를 역행시킨 대통령 탄핵을 결정한 것을 생각해 보면 30년 전의 뜨거운 함성이 헛된 것이 아님을 절감합니다.

1987년 이듬해 88 서울 올림픽을 통해 동방의 은둔 나라가 세계 속으로 들어가고 동서 진영 화합의 계기가 마련됐습니다. 소위 쌍팔년도의 희망과 에너지 넘치던 국운이 2018년 무술년에 다시 살아나 국운이 융성하기를 기대합니다.

박인호 용인한국외국어대부설고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