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새해 특집/3만 혁신기업이 3만달러 한국 이끈다]<2> 中 ‘사후 규제’로 창업 생태계 육성
흥미로운 점은 문제가 불거졌을 때 정부의 대응 방식이었다. 자전거를 아무 곳에나 세워놓아도 되기 때문에 일부 자전거들은 뒤엉켜 있다시피 방치되어 있거나 고가도로 입구까지 자전거를 세워 두는 문제가 생겼다. 한동안 공유자전거 산업에 개입하지 않던 상하이 정부는 한참 지나서야 업체가 스스로 자전거를 관리하게 하는 등의 규제를 만들었다. 이윤식 상하이 KOTRA무역관 과장은 “중국은 창업 자체를 막기보다는 문제점을 해결하는 방향으로 사후(事後) 규제를 만들어 창업 생태계를 육성한다”고 말했다. 스타트업이 새로운 사업 분야에 진출하자마자 불법 여부부터 가리는 한국 정부와 접근 방식이 다르다는 설명이다.
전날 방문한 중국 선전 공항 인근의 도로변 승강장 풍경도 마찬가지였다. 현지인들이 스마트폰으로 공유자동차 업체인 디디추싱(滴滴出行) 앱을 이용해 차량을 호출하고 있었다. 선전의 정보기술(IT) 업체에서 근무하다 최근 디디추싱의 운전기사로 일하는 류모 씨는 “디디추싱과 일반 택시 이용 고객이 다르기 때문에 사업 진입에 대한 반발은 거의 없었다”고 말했다. 택시는 스마트폰 사용이 익숙하지 않거나 당장 눈앞에 보이는 차를 타고 싶어 하는 외국인이나 노인 등이 이용하면 된다는 식이다. 한국에서는 정부 규제로 공유차량 사업 기회가 원천 봉쇄당하고 있다.
양 씨가 창업한 에너고는 개인 간의 모든 거래 내용을 디지털장부(블록)에 저장하고 이를 전체 참여자에게 전달해 거래의 신뢰를 높이는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한다. 에너고는 개인이 태양광 등을 통해 생산한 에너지를 필요한 사람끼리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교환하는 사업을 진행 중이다. 이 회사가 만든 가상통화(TSL)는 개인이 에너지저장장치(ESS)를 이용할 때 사용된다. 개인 간 에너지 교환 방식의 사업과 가상통화를 연동한 독특한 사업모델이다.
창업에 실패한 젊은이를 패배자가 아닌 좋은 경험을 쌓아 한 단계 성장한 인재로 보는 사회의 분위기도 한몫하고 있다. 실패 경험은 대기업에 입사하거나 대학의 경영학석사(MBA) 과정에 지원할 때 오히려 가점 대상이다. 창업기업에 투자할 때도 마찬가지다. 중국의 푸단(復旦)대는 기존에 실패 경험이 있는 창업자에게 투자하는 것을 오히려 선호한다.
상하이의 벤처투자기관인 LP공회의 쉐칭 공동조합원(조인트 파트너)은 “중국 정부가 벤처 시장에 투자하고 있지만 벤처 시장을 움직이는 것은 대기업을 포함한 민간자본의 힘”이라고 강조했다.
선전·상하이=정세진 기자 mint4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