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동아일보]<8> 배우 강석우
“東亞 3만 호 축하해요” 배우 강석우 씨가 라디오 스튜디오에서 동아일보 3만 호 축하 메시지를 들고 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그 시절 청춘 남녀, 대학생들은 학교에 갈 때 저마다 버스정류장 가판에서 동아일보 한 부씩을 사들고 가곤 했다. 신문의 절반 크기도 안 되는 작은 공간에 실린 ‘겨울나그네’를 읽기 위해서다. 잠시를 참지 못하고 대학 언덕을 걸어 올라가며 신문을 펼쳐 보던 젊은이들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요즘으로 치자면 40%에 육박하는 높은 시청률을 자랑하는 일일연속극 같은 느낌이었달까.
우리 가족 역시 동아일보의 오랜 독자였다. ‘겨울나그네’ 연재를 눈물로 읽었다. 매번 어찌나 감질나게 끝나던지 애간장이 녹을 지경이었다. 주로 ‘그때 민우가 다혜 앞에 나타나는데…’ 하는 식으로 끝나곤 했는데 다음 내용이 궁금해 이런저런 상상들로 밤잠을 설쳤다.
1983년 9월부터 이듬해 11월까지 동아일보에 387회 연재된 소설 ‘겨울나그네’(위 사진)와 고 곽지균 감독이 연출한 영화 ‘겨울나그네’. 주인공 민우 역을 맡은 강석우 씨는 “멜로 소설을 신문에서 다시 볼 수 있게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아래 사진 오른쪽은 은영 역을 맡은 배우 이혜영 씨. 동아일보DB
처음엔 동아일보를 통해 인기를 얻은 연재소설의 주인공 역을 맡기엔 부담이 됐다. 더군다나 남자 주인공 민우가 22세 정도로 그려졌는데 나는 29세의 적잖은 나이였던지라 선뜻 하겠다는 말을 못했다. 그러던 중 연재가 끝난 뒤 묶여 나온 소설과 시나리오를 받아 보게 됐고, 역시나 매 단계 울음이 울컥 쏟아졌다.
풋풋했던 민우와 다혜가 서로 사랑하고 헤어지면서 변해 가는 모습…. 연재될 때 눈물 흘린 대목을 시나리오로 읽는데도 눈물이 뚝뚝 흘렀다. 뒤늦게 하는 말이지만 촬영 때도 눈물을 많이 흘렸다. 개인사로 힘들어하던 민우가 모든 걸 다 정리하고 기지촌으로 내려가서 폐인처럼 살고 있을 때 사랑했던 다혜와 눈도 못 마주치던 장면은 촬영하면서 어찌나 슬펐는지. 이 소설이 동아일보에 연재돼 큰 인기를 끈 덕분에 영화화할 기회가 주어졌고, 그 결과로 내가 지금의 박보검, 송중기 씨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게 됐으니 고마울 따름이었다. 그 작품은 내 연기인생의 거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요즘은 클래식 프로그램 라디오 DJ로 활동 중이다. 어려서부터 라디오를 좋아하던 내가 가장 큰 영감을 받은 프로그램 중 하나가 1971년 동아방송(DBS)의 심야프로그램 ‘0시의 다이알’이다. 당시 최고의 라디오 프로그램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뿐일까. 중학생 무렵 동아방송 공개방송 견학을 갔었는데, 늘 귀로 듣던 프로그램이 만들어지던 현장을 눈으로 보고 느낀 그때가 아직도 떠오른다.
이 기사가 나가면 또 내 라디오 프로그램에 슈베르트의 ‘겨울나그네’를 틀어 달라는 청취자들의 사연이 이어질 것이다. 지금도 겨울이 되면 당시 연재소설과 영화를 떠올리는 사람이 적지 않다. 기회가 된다면 동아일보 독자분들 중 ‘겨울나그네’를 여전히 사랑하고 기억해주시는 분들과 당시 민우와 다혜가 거닐던 곳곳을 함께 걷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