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해운대구 옛 송정역의 역사 건물(1941년·왼쪽 사진)과 노천 대합실 기둥의 철제장식(1967년).
바닷가 간이역은 단출하고 경쾌하다. 송정역도 그렇다. 간이역 건물은 대개 삼각 모양의 박공지붕을 하고 그 아래 중앙에 출입문을 배치한다. 그런데 송정역 건물(1941년 건축)은 출입문을 박공의 중심선에 맞추지 않고 왼쪽으로 치우치게 배치했다. 박공과 출입문 캐노피 사이에 세 쪽의 작은 창이 있는데 이 또한 왼쪽으로 치우치게 했다. 일탈이고 파격이다. 이를 두고 어느 건축가는 “사람으로 치면 입 한쪽을 씩 올리며 반갑게 웃는 형상이다. 숫제 윙크를 하는 것 같다”고 했다. 참 기분 좋은 비유다. 바닷가를 찾는 이들은 무언가 채우고 싶은 빈틈을 하나씩 갖고 있다. 그 마음 상태에 어울리는 바닷가 간이역의 디자인이다.
철길 옆에 있는 노천대합실(1967년 건축)도 눈여겨보아야 한다. 천장의 삼각 트러스와 기둥 윗부분의 장식이 특히 매력적이다. 아르누보 스타일 철제 장식으로 고품격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송정역은 2013년 열차 운행을 중단했다. 동해남부선 복선 전철화로 근처에 새로운 송정역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 무렵 많은 사람들은 역 자체가 없어지지 않을까 걱정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 역은 비교적 잘 살아남았다. 사람들의 발길도 꾸준하고, 역 건물은 갤러리 겸 카페, 교육공간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이에 힘입어 최근엔 옛 송정역 일대를 역사문화공간으로 복원 활용하기 위한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송정역. 그 흔적을 제대로 기억했으면 좋겠다. 거기 우리 삶의 애환이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 겨울, 송정역에 다시 가고 싶다.
이광표 논설위원·문화유산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