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세계질병분류기호’에 포함
게임에 알코올·약물 장애에 쓰는 ‘중독’이란 표현이 따라붙은 지 오래다. 게임중독에 빠지면 술이나 마약 중독처럼 두뇌 활동이 억제되고 감정을 조절할 수 없게 된다. 이 때문에 게임중독도 정신건강질환의 하나로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지속적으로 제기됐다. 드디어 세계보건기구(WHO)가 최근 ‘게임장애(Gaming Disorder)’를 세계질병분류기호(ICD)에 개별코드로 넣는다고 밝혔다. 게임중독을 ‘질병’으로 공식화하는 조치다.
올해 28년 만에 개정되는 ICD는 5월 총회를 거쳐 최종 확정된다. 한국질병분류코드(KCD)는 ICD를 기초로 만든다. WHO가 게임중독을 ICD에 포함하면 한국 역시 이르면 내년부터 의료기관에서 게임중독을 공식 질환으로 진단할 것으로 보인다. 정보통신기술(ICT) 강국의 그림자 중 하나로 꼽힌 게임중독에 대한 본격적인 치료가 이뤄지는 셈이다.
특히 청소년의 게임이용률과 중독 현상은 위험 수위에 다다르고 있다. WHO를 비롯한 국제사회가 게임중독에 경종을 울리게 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청소년 중독이다. 지난해 통계청이 발표한 ‘한국의 사회동향 2017’ 자료에 따르면 초등학생 고학년(4∼6학년)의 91.1%, 중학생의 82.5%, 고등학생의 64.2%가 게임을 하고 전체의 2.5%가 게임중독 상태였다. 여성가족부의 2016년 조사에서도 중독 전(前) 단계인 중독위험군이 꾸준히 늘고 있다.
복지부는 2016년 정신건강 종합대책(2016∼2020년)을 발표하면서 인터넷과 게임, 스마트폰 중독을 질병코드에 포함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게임업계는 ‘수출 효자’인 인터넷이나 게임을 알코올, 도박, 마약과 같은 수준으로 규제해서는 안 된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여기에 게임산업을 담당하는 문화체육관광부 등이 반대하면서 게임중독을 공식 질환으로 규정하는 일은 흐지부지됐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빠르게 늘어나는 게임중독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려면 지금이라도 체계적 관리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전홍진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주변 사람들이 게임중독이라고 판단해도 본인이 완강히 부인하는 경우가 많다”며 “게임중독이 질병으로 공인되면 이런 환자들을 표준화된 기준으로 진단해 보다 적극적으로 치료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또 “게임중독 관련 연구와 치료방법 개발이 활성화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일각에선 ‘과(過)진단’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게임중독 증상이 모호한 만큼 환자를 끌어들이기 위해 치료가 필요하지 않은 게임 이용자들까지 환자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전 교수는 “합리적인 기준이 마련된다면 오히려 현재 자의적인 기준에 따라 중독으로 과진단된 게임 이용자들이 구제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WHO가 게임중독을 질환으로 규정한다면 우리나라에서도 게임중독에 대한 인식이 바뀌지 않겠느냐”며 “게임중독의 심각성을 고려할 때 체계적인 치료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 도쿄=장원재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