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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판위 작은 통일’ 좋지만… 남북 피겨 페어팀 ‘얄궂은 운명’

입력 | 2018-01-05 03:00:00

[평창올림픽 D-35]남북단일팀 얘기 나오지만…
캐나다서 같은 코치 지도받은 ‘인연’
北 렴대옥組 와일드카드로 출전땐 南 감강찬-김규은 꿈 무산될 수도
감강찬 “오직 올림픽만 바라봐… 단일팀 신경쓰지 않고 평소대로 훈련”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함께 기념사진을 촬영한 북한 페어 김주식(왼쪽)-렴대옥(왼쪽에서 세 번째)과 한국 페어 김규은(왼쪽에서 두 번째)-감강찬. 같은 스승 밑에서 훈련하며 우정을 쌓았지만 두 팀은 단일팀 구성을 둘러싸고 미묘한 상황에 놓였다. 사진 출처 감강찬 인스타그램

“남북 단일팀 문제는 신경 쓰지 않고 평소대로 연습하려고 노력 중입니다.”

한국 피겨스케이팅 페어의 감강찬(23)은 조심스럽게 말했다. 하지만 올림픽에 대한 포부를 밝힐 때는 표정이 굳어졌다. “선수에게 올림픽은 가장 큰 목표입니다. 피겨를 시작했을 때부터 오직 올림픽만 바라봤습니다.” 최근 상황에 대한 복잡한 심경이 느껴졌다.

감강찬은 김규은(19)과 2015년 11월부터 팀을 결성해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피겨 국가대표 선발전에 참가한 유일한 페어 팀으로 2018 평창 겨울올림픽 출전이 확정됐다. 4일 서울 목동아이스링크에서 만난 감-김 조는 “올림픽에서 한국에도 페어 팀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들의 꿈이 무산될 수도 있다. 현재 한국 피겨는 올림픽 피겨 네 종목 중 남자 싱글과 여자 싱글, 아이스댄스 자력 진출권을 획득했다. 페어에서 한국은 자력 진출권 획득에 실패했지만 개최국 쿼터를 활용해 참가한다. 이를 바탕으로 한국은 단체전 출전권도 노리고 있다.

하지만 남북 단일팀이 구성되면 감-김 조의 출전이 힘들어질 수 있다. 최근 최문순 강원도지사는 한 라디오 방송 인터뷰에서 “한국은 남녀 싱글, 아이스댄스 출전권이 있고 북한은 페어 출전권이 있어 단체전 단일팀을 구성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최 지사는 지난해 12월 18일 중국 쿤밍에서 북한 체육 관계자들과 만나 피겨 단일팀 제안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페어 렴대옥(19)-김주식(26) 조는 자력 진출권을 획득하고도 출전 의사를 밝히지 않아 권리가 소멸됐다. 렴-김 조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와일드카드’로 북한을 평창 올림픽에 참가시킬 경우 출전 1순위로 꼽힌다. 남북 단일팀이 단체전에 출전할 경우 현재 북한에서 참가할 수 있는 유일한 종목은 페어다. 이 때문에 단일팀의 취지를 살리려면 1팀이 나가는 단체전 페어 출전권을 북한에 내줘야만 한다.

감-김 조의 개인전 출전 자격도 상실될 수 있다. 피겨계 관계자는 “단일팀이 구성돼 북한 페어 팀이 들어오면 남북은 네 종목 모두 출전자를 보유한다. 이 경우 국제빙상경기연맹(ISU)이 한국의 개최국 쿼터 활용을 막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감-김 조와 북한 렴-김 조는 지난여름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브뤼노 마르코트 코치(44·캐나다)에게 함께 지도를 받았다. 이들은 차로 20분 거리에 있는 두 개의 아이스링크에 나뉘어 훈련을 받았지만 일주일에 두 번 정도는 같은 곳에서 훈련을 했다고 한다. 감강찬은 “북한 선수들이 처음 몬트리올에 왔을 때 공항에 데리러 가기도 했다”면서 “특히 주식이 형이 나를 만나면 반갑게 인사해줬다. 우리는 서로 ‘잘하고 있다’고 격려했다”고 말했다. 김규은은 “북한 여자 코치가 배추김치를 만들어 우리에게 나눠주기도 했다”고 말했다. 감-김 조는 남북 단일팀 구성 여부와 상관없이 평창에서 꼭 렴-김 조를 보고 싶다고 했다.

한 스승 밑에서 한솥밥을 먹은 두 팀은 그러나 미묘한 상황에 놓여 있다. 단일팀 구성은 남북 화합을 보여줄 수 있다. 하지만 이로 인해 한국 선수들의 올림픽 출전이 좌절될 수 있다는 점이 문제다. 한국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도 지난해 단일팀 문제로 마음고생을 했다. 북한 선수들이 한국팀에 합류하면 일부 한국 선수가 23명의 엔트리에서 제외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단일팀이 거론될 때마다 일부 선수는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다.

정윤철 기자 trigg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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