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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소화전까지 막는 불법주차

입력 | 2018-01-05 03:00:00


소방차가 쓸 소화전, 알아볼 수 없거나 주차차량이 가리거나 대형 화재 진압에 결정적 역할을 하는 지하식 소화전이 도심 곳곳에 있지만 안전불감증 탓에 외면당하고 있다. ① 맨홀 뚜껑이 눈에 잘 띄도록 노란색 페인트가 칠해진 소화전. ② 페인트가 다 벗겨져 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소화전. ③ 불법 주차 차량 때문에 무용지물이 된 소화전. 2018년 대한민국 안전의 민낯이다. 양회성 yohan@donga.com·전채은 기자

“차 밑에 뭐가 있는데요?”

4일 오후 서울 중구 장충단로 주택가에서 만난 정모 씨(62)가 기자의 손끝을 바라보며 물었다. 정 씨의 시선은 하늘색 SM3 승용차 아래를 향했다. 조금 전 폭 4m 골목길에 세운 자신의 승용차다. 앞바퀴와 뒷바퀴 사이에 지름 60cm 정도의 맨홀 뚜껑이 있었다. 얼핏 상하수도 맨홀 같지만 엄연히 불 끄는 데 사용하는 ‘소화전’이다. 뚜껑 바깥에 그려진 노란선 테두리가 소화전이라는 뜻이다. 도로변에서 흔히 보는 빨간 소화전을 매립식으로 설치한 것이 지하식 소화전이다. 당연히 주변 5m 내 주차는 불법이다. 정 씨는 “이런 지하식 소화전이 있는 걸 오늘 처음 알았다. 그냥 하수도 맨홀인 줄 알았다”고 말했다.


큰불이 나면 출동한 소방펌프차 물이 바닥날 때가 있다. 이때 필요한 게 소화전이다. 도로나 골목 곳곳에 설치된 소화전에서 급히 호스를 연결해 물을 공급받는다. 소방차 진입이 어려운 좁은 골목길과 전통시장 근처에서는 더욱 중요하다.

동아일보 취재팀은 3일부터 이틀간 서울지역 주요 주택가와 상가 골목에 설치된 지하식 소화전 관리 실태를 확인했다. 대부분의 운전자와 행인이 지하식 소화전이 있는지조차 몰랐다. 통행에 불편을 준다는 이유로 소화전을 땅속에 넣었지만 이를 제대로 알리지 않은 탓에 사람들 인식에서조차 사라진 것이다.

지하식 소화전 뚜껑에는 노란색으로 ‘소화전’ ‘주차금지’ 등이 쓰여 있다. 차량 운전자 시야에는 잘 들어오지 않는다. 그나마 노란색 페인트가 벗겨진 채 방치된 곳도 많다. 아예 소화전 위에 흰색 페인트를 덧칠해 주차구역으로 운영하는 곳도 있다. 소화전 위치를 알리는 다른 표지판은 없다.

최돈묵 가천대 설비소방공학과 교수는 “미국처럼 소화전 앞 불법 주차 차량을 파손해도 문제가 없게 하려면 처벌 강화도 필요하지만 이 과정에서 발생할 분쟁 해결을 위해 구체적인 가이드라인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권기범 kaki@donga.com·김은지·윤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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