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은아 국제부 기자
조은아 국제부 기자
연초부터 미국에서 막말을 듣는 주인공은 가상통화 ‘비트코인’이다.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 때 백악관 예산국장이던 데이비드 스토크먼은 새해 첫날(현지 시간)부터 미국 경제매체 CNBC와 인터뷰에서 “가상통화 투기꾼들은 나무가 하늘 끝까지 자라리라 믿는 어리석은 집단이다. 결국 (어리석은) 투자 열기에 두 손만 태워버리고 말 것”이라며 살벌하게 경고했다. 유명 원자재 트레이더 데니스 가트먼도 최근 같은 매체 인터뷰에서 “비트코인 시장은 범죄자를 위한 시장”이라고 비판했다. 월가도 술렁이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3일 미국의 대표적 증권사 메릴린치가 비트코인 관련 펀드와 선물 거래를 금지했다고 보도했다.
목소리 높이는 비관론자들과 달리 낙관론자들은 소리 없이 투자 중이어서 눈길을 끈다. 전자결제회사 페이팔 공동창업자인 피터 틸이 최근 비트코인 1500만∼2000만 달러(약 157억∼214억 원)를 조용히 사들였다가 WSJ에 딱 걸렸다. 틸은 페이스북 설립 초창기에 투자해 성공한 거물이 아니던가. 시장은 이 소식을 환영하며 비트코인 값을 끌어올렸다. 2일 보도 뒤 코인베이스에서 비트코인은 13.5% 올라 1만5000달러를 찍었다.
아시아 금융허브로 꼽히는 싱가포르 도심 한가운데는 비트코인만 받는 카페가 생겨났다. 이 카페는 다른 가상통화도 받을 예정이다. 알고 보면 이 카페 주인은 비트코인 채굴기업이다. 비트코인 관련 기업들의 다양한 시도로 비트코인 시장은 부지런히 크고 있다.
미국 경제전문지 포천에 따르면 캘리포니아 기반의 항공사 칩에어, 일본 항공사 피치항공 등이 비트코인 결제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온라인 여행사 익스피디아, 독일 숙박서비스기업 나인플래츠 등도 결제 수단으로 비트코인을 허용한다. 한국에서는 투기의 산물로 알려진 가상통화가 금융 선진국에선 혁신의 아이콘으로 여겨진다.
‘2017년이 비트코인의 해라면, 2018년은 리플의 해’란 전망(영국 가디언)까지 나오기 시작했다. 리플은 2012년 은행 간 간편한 송금을 위해 제작된 가상통화 ‘XRP’를 생산하는 미국 기업. 이 화폐는 지난해 주요 가상통화 중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리플넷’이란 플랫폼을 통해 정부나 중앙은행을 거치지 않고 거래된다. 누구나 채굴할 수 있는 비트코인과 달리 한 기업만 생산한다. 처음 제작될 때 1000억 개만 한정적으로 발행됐고 매달 최대 10억 개씩만 시장에 풀린다. 현재 350억 개가 유통되는 중이다. 한국의 우리은행, 신한은행은 물론이고 일본 SBI은행, 레소나은행 등이 리플을 통한 해외송금 시험에 성공해 올해 상용화될 것이란 기대가 나온다.
금융 신산업의 가능성을 간파했는지 가상통화 강국을 노리는 국가들이 눈에 띈다. 일본 정부는 투기 세력을 억누르는 규제보다 법을 통한 가상통화 양성화에 힘쓰고 있다. 일본 금융청은 지난해 4월 자금결제법을 개정해 가상통화를 지급결제 수단으로 인정했다. 싱가포르는 지난해 핫(hot)한 가상통화 기업 리플 사무소 유치에 성공했다. 금융시장 규제에 엄격한 스위스는 추크 지역을 ‘크립토밸리(가상통화 지역)’로 정해 관련 산업 육성에 힘쓴다. 가상통화 산업의 실리콘밸리로 키우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두려움은 무지(無知)에서 나오기도 한다. 혹시 우리가 가상통화를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해서, 그 미지의 세계가 두렵기만 한 건 아닐까. 제대로 정확히 알고 채찍을 들고 있는지 꼼꼼히 따져볼 일이다.
조은아 국제부 기자 ach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