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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석의 일상에서 철학하기]막말, 실언 그리고 유머

입력 | 2018-01-06 03:00:00


김용석 철학자

“말은 오해의 근원이야.”

생텍쥐페리의 동화에서 여우가 어린 왕자와 친구 관계를 맺으면서 한 말입니다. 어른들도 귀담아들어야 할 말이지요. 지난해에도 정치 무대에서 막말과 실언(失言)들이 난무했으니까 말입니다. 잘한 말도 오해의 근원이 될 수 있는데 막말이야 오죽하겠습니까. 새해에는 여우의 말을 새겨들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정치인들은 왜 막말을 하는 걸까요? 국민의 의식 수준을 얕잡아 봐서 그런 걸까요? 어떤 정치인은 ‘전략적’이라며 자기변명을 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런데 전략도 잘 써야죠. 품위까지는 갖추지 못하더라도 상식 파괴 수준까지 가면 곤란하지요. 수단이 목적을 변질시킬 수 있거든요.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목표를 추구하면 변질되거나 부식된 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을 시대착오적 마키아벨리스트들은 간과하지요. 목표가 수단을 정당화할 때도 있지만, 수단이 목표를 부당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공적인 자리에 있으면서 막말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들의 사고 능력이 걱정됩니다. 생각을 하려면 언어가 필요합니다. 언어가 생각을 구성하지요. 굳이 말을 만들어 표현하면 막말은 ‘막생각’을 만들어 냅니다. 막말에 습관 들면 사고 능력에 이상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또한 막말을 자주 한다는 건 지독하게 자기중심적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남에 대한 배려가 없는 거지요. 남을 무시하고 면박하고 모욕하는 언어들을 쓰면서 말입니다. 공인들은 공동체를 위한 일을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공동체 구성원들을 배려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른바 ‘프로 정신’이 없다는 방증이기도 하지요.

공인들의 실언도 많았습니다. 말실수는 생각과 언어가 분리될 때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쉽게 말해 ‘별생각 없이 말할 때’ 언어가 일으키는 사건입니다. 이때 생각의 자리는 고정관념이 대체합니다. 실언이 선입견을 표현하는 경우가 많은 건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지요. 실수이니까 악의는 없을 수 있지만 이도 습관이 들면 다른 사람들에게 큰 해악이 될 수 있습니다.

전문 정치인을 비롯한 공인들은 힘들게 일합니다. 그들을 이해해준다는 차원에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혹시 막말을 하면서 그것이 유머라고 착각하는 건 아닌지요. 막말은 그것이 아무리 웃음을 유발하더라도 유머가 될 수 없습니다. 어떤 정치인은 소위 ‘아재 개그’를 자신의 장기처럼 자랑하기도 하는데요. 이도 유머와 동일시되기 힘듭니다.

생각하고 공부해야 좋은 유머를 할 수 있습니다. 유머에 관한 글을 여러 편 썼던 중국 작가 린위탕(林語堂)은 “유머의 인생관은 진실하고 너그러우며 긍정적이다”라고 했습니다. 진실, 배려, 삶의 긍정성을 유지하려면 지속적으로 생각하고 공부하며 살아야 합니다. 공인들은 더욱 그래야 합니다.

막말이 ‘잘못 생각’하기 때문이고, 실언이 ‘생각 없이’ 말하기 때문이라면, 유머는 ‘깊고 넓은 생각’을 바탕으로 하는 것입니다. 뛰어난 유머는 바로 폭소를 유발하기보다, 듣고 뒤돌아서면서 미소 짓게 합니다. 그리고 자기 생각과 지식으로 만들어낸 것이기 때문에 정보를 수집하는 ‘아재 개그’와 다릅니다. 유머는 상상력과 창의력의 표현입니다.

이제 우리도 창의적 정치인들을 가져야 할 때가 되지 않았나요. 이는 나라 살림에서 중요합니다. 창의적 정치인이 되기 위해 노력하면, 막말은 안 하고 실언은 대폭 줄이고 유머로 사람들을 감동시키게 되겠지요. 새해에는 그런 정치를 기대합니다.

김용석 철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