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자룡 이슈&피플팀 기자 前 베이징 특파원
구자룡 이슈&피플팀 기자 前 베이징 특파원
주목할 점은 시위가 이란인들이 변화에 대한 열망을 안고 선출한 하산 로하니 대통령 정부의 경제 정책 실패에 대한 불만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2009년 ‘녹색 운동’이라는 조직을 중심으로 학생 지식인 중산층이 참여한 가운데 벌어진 시위는 큰 희생만 치르고 진압됐다. 이란 시민들은 2013년 로하니 대통령을 선출해 변화에 대한 욕구를 나타냈고, 로하니 대통령은 지난해 5월 보수파 출신 후보를 꺾고 재선됐다. 하지만 이번 시위는 물가 일자리 문제 등 민생을 해결하지 못하면 보수파 개혁파 모두 거부한다는 메시지를 보여줬다.
온건 개혁파인 로하니 대통령은 2015년 7월 유엔 안보리 5개국과 독일 등 6개국과 핵합의를 타결시켜 서방의 제재 해제를 이끌어냈다. 2016년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이 12.5%에 이르고 40%를 웃돌던 인플레도 10.5%까지 끌어내렸다. 하지만 실업률은 10%대에서 더욱 높아지고 지난 한 해만도 계란값이 50% 오르는 등 치솟는 물가상승률에 대한 불만이 높았다. 시위의 도화선은 지난해 12월 발표된 새해 정부 예산안 중 기름값 50% 인상과 저소득층에 대한 현금 보조금 삭감이었다. 그런데도 종교 기관에 대한 지원은 늘었다. 서방의 제재 해제 혜택이 이슬람 혁명 세력에만 돌아갔다는 불만도 커졌다. 배도 고프고 상대적 박탈감도 컸다.
시위 진압 장면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불과 수 시간 만에 테헤란 등 전국으로 퍼져 나가고 구호도 이틀도 안 지나 로하니 대통령을 넘어 최고 종교 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와 이슬람 신정 체제 거부 등으로까지 확대됐다. 1979년 1월 이슬람 혁명으로 왕조 정권을 몰아낸 후 혁명 체제에 대한 반감과 최고 성직자에 대한 거부감이 이번처럼 드러난 적이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독재자는 물러가라” “우리는 가난한데 성직자는 팬시 카를 몰고 다닌다” “혁명 수비대에 죽음을!” 심지어 “하메네이에게 죽음을”이라는 구호도 등장했다.
시아파 종주국 이란이 수니파 중심국인 사우디와 종교적 패권 및 영향력 확대를 놓고 이라크 시리아 예멘 등 주변국에 대한 군사적 지원을 늘리는 것에 대한 불만도 터져 나왔다. 이는 국내적으로 신정 체제에 대한 거부감이 높은 것과 관련된다.
중동과 아프리카에서 번졌던 ‘색깔 혁명’에서처럼 이란에서도 SNS가 다시 한 번 큰 역할을 했다.
하지만 이란 정부는 시위에 외부 세력이 개입했다며 진압의 명분으로 삼는 등 트럼프 행정부의 개입은 역화를 부르고 있다. 하메네이는 2일 “이란의 적들이 다양한 수단으로 이슬람 체제에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고 비난했다.
중국과 러시아는 ‘이란 시위는 국내 문제’라고 일축하고 프랑스 등 유럽 우방도 신중한 태도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 핵합의의 수정 혹은 폐기를 공언해 추이가 주목된다. 이란은 북한과도 군사 협력 관계가 밀접하다. 북한 핵문제가 아직 뜨거운 현안으로 남아 있는 가운데 이란발 폭풍의 눈이 연초의 화두로 떠올랐다.
구자룡 이슈&피플팀 기자 前 베이징 특파원 bonh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