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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애진 산업2부 기자
해가 바뀌었다는 건 지인들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도 느낄 수 있다. 앞다투어 자신의 새해 결심을 올리기 때문이다. 한 친구는 준비하던 시험에 꼭 합격하겠다고 다짐했다. 올해는 반드시 다이어트에 성공하겠다는 친구도 있었다. 자신의 결심을 주변에 널리 알려야 조금이라도 더 실천할 수 있으리라는 게 친구들의 생각이었다.
새해 계획 못지않게 SNS에서 많이 볼 수 있는 것이 ‘계획 잘 지키는 법’이다. 해마다 지키지 못할 계획을 반복해서 세우는 사람이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최근 20세 이상 남녀 2403명을 설문한 결과 84.2%가 매년 반복하는 ‘단골 새해 계획’이 있다고 답했다. 응답자 중 10명에 3명꼴(34.4%)로 새해 계획이 석 달 안에 무너진다고 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 중에 새해가 시작된 지 일주일 만에 어긋난 계획에 좌절하고 있는 이도 있을 것이다. 너무 속상해하지 말길 바란다. 2018년 새해는 단 한 번이 아닐 수도 있다. 우선 다음 달 16일 설날이 있다. 음력으로 따지면 그날이 새해다.
전 세계로 시야를 넓히면 더 많은 새해가 기다리고 있다. 태국에서는 매년 4월 13일 ‘송끄란(Songkran) 축제’가 벌어진다. 태국력으로 새해가 시작되는 날인 이날 서로 물바가지를 퍼부으며 축하하는 이벤트다. 인도에선 매년 2, 3월경 ‘색의 축제’로 유명한 ‘홀리 축제’가 열린다. 힌두력으로 한 해의 마지막 달인 팔구나(Phalguna)의 보름날부터 1, 2주가량 새해를 축하하며 서로 다양한 색깔의 물감이나 색종이 가루를 뿌린다.
소설가 김연수의 단편소설 ‘벚꽃새해’에는 서른이 된 해에 되는 일 하나 없이 우울하기만 한 여자가 나온다. 새해가 시작된 지 3개월 만에 다니던 직장에서 잘린 그는 할 일도, 갈 곳도 없이 방황한다. 잔뜩 취해 집에 돌아온 어느 밤, 그날이 4월 13일이란 걸 깨달은 여자는 곧장 욕실로 들어가 외출복을 입은 채 물을 뒤집어썼다. 몇 년 전 태국에 여행 갔을 때 물벼락을 맞으며 새해를 맞았던 기억이 떠올라서다. 물만 맞으면 그때처럼 모든 일이 잘될 것 같던 예상과 달리 그는 차가운 물에 젖어 한동안 벌벌 떨어야 했다. 그래도 “어쨌든 누가 뭐래도 나의 서른 살은 이제부터”라고 선언한다.
‘시간은 인류 최고의 발명품’이라는 말이 있다. 한 덩어리로 이루어진 시간을 어제, 오늘과 내일로 나누고 이를 다시 1년이라는 개념으로 만든 건 인간이다. 그 덕분에 하루를 헛되이 보냈어도, 한 달을 무의미하게 흘려보냈어도 새로 시작할 기회를 얻는다. 벚꽃이 피기 시작하면 그때가 ‘벚꽃새해’가 되듯이, 무수히 많은 ‘나만의 새해’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 좋지 않은가. 새로운 어떤 날이라는 가장 특별한 선물을, 마음만 먹으면 자신에게 줄 수 있으니.
주애진 산업2부 기자 ja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