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정훈 출판평론가
발행인 개념은 출판물이 이윤을 창출하는 상품으로 자리 잡으면서, 법적 권리와 책임 관계를 확실히 해야 할 필요가 커진 근대 이후의 산물이다. 20세기 초까지 인쇄소를 겸하는 출판사가 많았기 때문에, 발행인은 인쇄소·출판사 대표를 뜻했다. 1884년 3월 설립된 최초의 근대적 민간 출판사 광인사(廣印社)는 첫 책으로 한문 도서 ‘충효경집주합벽(忠孝經集註合璧)’을 펴냈지만 발행인 사항은 불분명하다. 여러 사람이 합작 투자하여 설립했기 때문이다.
1947년 국사원에서 펴낸 ‘백범일지’의 발행인·편집자는 백범 김구의 아들 김신 전 공군참모총장이다. 저작권자의 권리는 저작자 생존기간 및 사후 50년까지 보호됐기 때문에(2013년 7월 1일부터는 사후 70년), 1949년 별세한 백범의 저작물은 1999년까지 저작권을 주장할 수 있었다. 김신은 ‘백범일지’가 더욱 널리 출간돼 읽히길 바라는 뜻에서 저작권을 일찍 해제하였다.
중국 청나라의 장해붕(1755∼1816)은 자신의 방대한 장서를 바탕으로 학진토원(學津討原) 1048권, 묵해금호(墨海金壺) 727권, 차월산방휘초(借月山房彙초) 283권 등 여러 총서를 펴냈다. 그가 발행인의 소명을 말한다. “책을 모아 소장하는 것은 읽는 것만 못하고, 읽는 것은 책을 펴내는 것만 못하다. 독서는 자신을 위한 것이지만 출판은 남을 이롭게 한다. 작가를 기리고 후대 사람들의 수양을 뒷받침하며 학문을 이끈다. 이 길보다 더 넓은 것이 있을까.”
표정훈 출판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