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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왕초보… 쳐다보기도 싫을만큼 쳤죠”

입력 | 2018-01-09 03:00:00

[주목! 2018 문화계 샛별]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 박정민, 자폐 증상 피아노 천재 열연




‘피아노 왕초보’였던 박정민은 불과 6개월 만에 웬만한 곡은 악보만 보고 칠 수 있는 수준이 됐다. 그는 “촬영할 때는 피아노를 쳐다보기도 싫더니 요샌 가수 정준일의 ‘안아줘’를 즐겨 친다. 좋은 취미가 생겼다”며 웃었다. 오른쪽 사진은 대학로 길거리에서 즉흥 피아노 연주를 하는 영화 속 진태의 모습.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충무로의 떠오르는 별’, ‘신인상을 휩쓴 괴물 신인’.

배우 박정민(31)에게 요즘 많이들 따라붙는 수식어다. 지난해 영화 ‘동주’에서 윤동주 시인의 사촌인 독립운동가 송몽규 역으로 각종 영화제 신인상을 받은 그가 17일 개봉하는 휴먼코미디 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에서 과감한 연기 변신을 꾀했다. 자폐 환자지만 피아노 연주에 천부적인 재능을 지닌 진태 역을 완벽하게 소화했다.

5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난 박정민은 “실제로는 피아노 건반 위 ‘도’와 ‘레’도 구별 못할 정도로 음악에 젬병이라 피아노 천재 역할은 이중으로 고역이었다”면서도 “시나리오를 읽는 순간 완전히 매료돼 고민 없이 선택했다”고 말했다. ‘동주’ 출연이 결정된 뒤 먼저 북간도에 있는 송몽규 선생의 묘와 생가부터 찾았던 그는 이번엔 일주일에 한 번씩 자폐 환자 관련 시설에서 봉사활동에 나섰다.

“먼저 그분들을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어야 제대로 된 연기를 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연기를 할 때는 특징을 최대한 반영하되 희화화하지 않으려고 애썼고요. 관련 서적도 10권 넘게 읽었어요. 영화를 본 한 사회복지사 선생님이 ‘잘 표현해주셔서 고맙다’고 하셨습니다. 제겐 정말 최고의 칭찬이었지요.”

사실 영화에서 박정민의 대사는 ‘네’가 대부분이다. 그만큼 말투와 표정, 손동작 하나하나를 더 신경 써야 했다. 공부하고 연구할수록 그 ‘네’에 여러 가지 뜻이 담겼다는 것도 깨달았다.

“이분들의 ‘Yes’는 결코 좋다는 뜻만 담긴 게 아니에요. 못 알아들어서, 혹은 힘든 대화를 끝내고 싶어서 ‘네’라고 한 것일 수도 있거든요. 그래서 상대역인 이병헌, 윤여정 선배님의 대사를 더 치밀하게 분석했습니다. 일종의 ‘설계’를 한 거죠. 하지만 상황에 따라서 언제든 유연하게 무너질 수 있는 설계여야 했습니다. 이게 참 어려웠어요.(웃음)”

더 애를 먹은 건 피아노 연주였다. 박정민은 “컴퓨터그래픽(CG)을 쓸 수도 있지만 관객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다”며 “피아노를 다시는 쳐다보기 싫을 정도”라고 했다. 어릴 때 피아노 학원 한번 다녀본 적 없던 그는 6개월 동안 연습 끝에 헝가리 무곡, 차이콥스키 연주곡 등을 무리 없이 쳐냈다.

“하루에 6시간씩 연습했어요. 눈앞이 빙글빙글 돌 정도로. 시늉만 했다간 관객들에게 티가 다 나니까요. 어떻게든 배우가 직접 연주해야 에너지가 스크린을 뚫고 관객에게 닿을 거라 믿었습니다.”

연습에 연습을 거듭하는 성격 탓에 현장에선 ‘지독한 노력형 배우’라는 제작진들의 찬사를 끊임없이 받았다. 하지만 ‘충무로의 떠오르는 별’과 같은 말은 언급하자마자 민망한 표정부터 지었다.

“전혀 귀에 꽂히지가 않아요. 소속사에서 손쓴 게 아닐까요, 하하. 그런 말 들으면 되레 무섭습니다. ‘곧 들통나겠다’ ‘절대 안심하지 마라’ 이런 나쁜(?) 생각부터 하는 게 습관이 돼서…. 다만 연기는 연습 때부터 철저하게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게 몸에 밴 것 같습니다.”

올해도 박정민은 쉼 없이 달린다. ‘그것만이 내 세상’을 시작으로 ‘염력’ ‘변산’ 등 올해만 무려 5편이나 선보일 예정이다. 지난해에도 쉬는 날 하루 없이 일만 하느라 슬럼프까지 왔단다. 그래도 결국은 ‘힘들어도 즐겁게 하면 된다’며 마음을 고쳐먹었다.

“아직 제가 자리 잡았단 느낌은 전혀 안 들어요. 그래도 뭔가 고비를 넘어서니까 오히려 이젠 현장이 즐거워졌습니다. 연기를 취미처럼 하겠다고 마음먹으니 즐긴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이제 조금 알게 됐어요. 더 열심히 달려야죠, 하하.”

장선희 기자 sun1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