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목! 2018 문화계 샛별]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 박정민, 자폐 증상 피아노 천재 열연
‘피아노 왕초보’였던 박정민은 불과 6개월 만에 웬만한 곡은 악보만 보고 칠 수 있는 수준이 됐다. 그는 “촬영할 때는 피아노를 쳐다보기도 싫더니 요샌 가수 정준일의 ‘안아줘’를 즐겨 친다. 좋은 취미가 생겼다”며 웃었다. 오른쪽 사진은 대학로 길거리에서 즉흥 피아노 연주를 하는 영화 속 진태의 모습. CJ엔터테인먼트 제공
배우 박정민(31)에게 요즘 많이들 따라붙는 수식어다. 지난해 영화 ‘동주’에서 윤동주 시인의 사촌인 독립운동가 송몽규 역으로 각종 영화제 신인상을 받은 그가 17일 개봉하는 휴먼코미디 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에서 과감한 연기 변신을 꾀했다. 자폐 환자지만 피아노 연주에 천부적인 재능을 지닌 진태 역을 완벽하게 소화했다.
5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난 박정민은 “실제로는 피아노 건반 위 ‘도’와 ‘레’도 구별 못할 정도로 음악에 젬병이라 피아노 천재 역할은 이중으로 고역이었다”면서도 “시나리오를 읽는 순간 완전히 매료돼 고민 없이 선택했다”고 말했다. ‘동주’ 출연이 결정된 뒤 먼저 북간도에 있는 송몽규 선생의 묘와 생가부터 찾았던 그는 이번엔 일주일에 한 번씩 자폐 환자 관련 시설에서 봉사활동에 나섰다.
사실 영화에서 박정민의 대사는 ‘네’가 대부분이다. 그만큼 말투와 표정, 손동작 하나하나를 더 신경 써야 했다. 공부하고 연구할수록 그 ‘네’에 여러 가지 뜻이 담겼다는 것도 깨달았다.
“이분들의 ‘Yes’는 결코 좋다는 뜻만 담긴 게 아니에요. 못 알아들어서, 혹은 힘든 대화를 끝내고 싶어서 ‘네’라고 한 것일 수도 있거든요. 그래서 상대역인 이병헌, 윤여정 선배님의 대사를 더 치밀하게 분석했습니다. 일종의 ‘설계’를 한 거죠. 하지만 상황에 따라서 언제든 유연하게 무너질 수 있는 설계여야 했습니다. 이게 참 어려웠어요.(웃음)”
더 애를 먹은 건 피아노 연주였다. 박정민은 “컴퓨터그래픽(CG)을 쓸 수도 있지만 관객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다”며 “피아노를 다시는 쳐다보기 싫을 정도”라고 했다. 어릴 때 피아노 학원 한번 다녀본 적 없던 그는 6개월 동안 연습 끝에 헝가리 무곡, 차이콥스키 연주곡 등을 무리 없이 쳐냈다.
“하루에 6시간씩 연습했어요. 눈앞이 빙글빙글 돌 정도로. 시늉만 했다간 관객들에게 티가 다 나니까요. 어떻게든 배우가 직접 연주해야 에너지가 스크린을 뚫고 관객에게 닿을 거라 믿었습니다.”
“전혀 귀에 꽂히지가 않아요. 소속사에서 손쓴 게 아닐까요, 하하. 그런 말 들으면 되레 무섭습니다. ‘곧 들통나겠다’ ‘절대 안심하지 마라’ 이런 나쁜(?) 생각부터 하는 게 습관이 돼서…. 다만 연기는 연습 때부터 철저하게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게 몸에 밴 것 같습니다.”
올해도 박정민은 쉼 없이 달린다. ‘그것만이 내 세상’을 시작으로 ‘염력’ ‘변산’ 등 올해만 무려 5편이나 선보일 예정이다. 지난해에도 쉬는 날 하루 없이 일만 하느라 슬럼프까지 왔단다. 그래도 결국은 ‘힘들어도 즐겁게 하면 된다’며 마음을 고쳐먹었다.
“아직 제가 자리 잡았단 느낌은 전혀 안 들어요. 그래도 뭔가 고비를 넘어서니까 오히려 이젠 현장이 즐거워졌습니다. 연기를 취미처럼 하겠다고 마음먹으니 즐긴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이제 조금 알게 됐어요. 더 열심히 달려야죠, 하하.”
장선희 기자 sun1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