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그룹 소나무.
“그래? 난 ‘P.O.P’에 3만 원.”
길을 걷던 에이전트7(임희윤)은 20대 남녀가 나누는 대화에 귀가 번쩍 뜨였다. ‘혹시… 가상화폐?’ 안 그래도 요즘 비트코인으로 떼돈을 벌어 회사를 관뒀다는 전설에 흔들리던 참. 잘근잘근 손톱을 깨물었다. ‘이제라도 소나무코인, P.O.P코인에 (투자) 들어가야 하나…?’
“아저씨! 소나무, P.O.P는 걸그룹 이름이라고요. P.O.P는 ‘퍼즐 오브 팝’의 약자, 몰라요?”
괜한 질문을 했다가 오늘도 신세대에게 면박만 받은 7. 탐색 결과, 이는 아이돌 가수 크라우드 펀딩 서비스라는 걸 알아냈다. 여기에 투자하면 대박 신화도 이룰 수 있는 걸까. ‘그렇다면 이것 역시 인류문화를 아이돌 펀딩으로 혼란시키려는 외계인의 음모?’
메이크스타 홈페이지.
●아이돌도 크라우드 펀딩 시대
7은 요즘 뜬다는 케이팝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 ‘메이크스타’부터 접속했다. 먼저 걸 그룹 ‘에이프릴’ 스페셜 화보집 제작 프로젝트에 참여해보기로 했다. 참여 가능 상품은 금액에 따라 8종. 금액이 높을수록 더 많은 혜택을 준다. 이 세계에선 이를 ‘리워드(reward·보상)’라 불렀다.
고심 끝에 3만9000원짜리를 선택했다. ‘디지털 명예제작자증서, 한정판 화보집 1권, 화보집 크레딧에 명예제작자 이름 올리기….’ 학교 노천극장 건립 때 돌 좌석에 기부자 이름을 새겨주는 식인가. 30만 원 투자하면 ‘스탬프 세트, 사인 폴라로이드 사진 세트. 친필카드엽서, 한정판 화보스티커세트’가 추가됐다. ‘선착순 60명에겐 에이프릴 멤버들이 직접 이름을 불러주는 생일축하 영상’도 눈에 띄었다. 화보집과 음반은 다른 데서도 살 수 있었지만, 펀딩 참여자에게만 주어지는 특전이 확실히 달랐다.
초기에는 덜 알려진 신인이 많았지만 그간 시아준수, EXID, B.A.P, 아스트로, 라붐 같은 유명 아이돌도 대거 참여했다. 콘서트와 음반, 화보집, 팬 미팅까지 프로젝트마다 다양한 리워드가 내걸린다. 멤버들과 다과를 즐기는 팬 사인회에 참여하는 특전이 주어지는 경우까지 있다.
“펀딩 참여자의 30%가 서비스를 통해 그룹을 접했다고 할 정도니까, ‘이런 그룹이 데뷔했다’ 하는 홍보 창구로도 쓰이죠.”
텀블벅 홈페이지.
●텀블벅, 킥스타터, 인디고고… 국내외에서 성장 중인 아티스트 크라우드 펀딩
킥스타터 이후 최근까지 인디고고와 아티스트셰어, 패트리온, 플레지뮤직 등 음악에 좀더 초점을 맞춘 서비스가 속속 생겨나 성공을 거뒀다. 국내에서도 텀블벅이 영화와 연극, 음반 분야에서 크라우드 펀딩 서비스를 진행하고 있다.
아이돌 전문 비평 웹진 ‘아이돌로지’의 미묘 편집장을 찾았다.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동안 멤버들이 계속해 인사 동영상을 올려줍니다. 모닝콜 음성 메시지를 해주는 경우도 있죠. 골수팬들에게는 좀더 친밀하고 특별한 경험을 제공하고, 가수 입장에서는 방송 활동으로는 제한적인 홍보 활동을 할 수 있죠. ‘프로듀스 101’ 같은 TV 오디션 프로그램의 대안 역할로도 주목됩니다. 방송국이 판을 깔아주는 게 아니라 ‘내가 내 아이돌을 직접 찾아서 키워낸다’는 특별한 느낌을 줄 수 있어 앞으로도 성황을 이룰 것 같습니다.”
결국 7은 가상화폐에 투자할 돈을 아껴 신인 그룹의 스타 펀딩에 넣기로 했다. ‘혹시 알아? 더 큰 기쁨을 줄지….’ 7은 드디어 참여 버튼을 눌렀는데…. (다음 회에 계속)
임희윤기자 i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