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서울 성북구 A아파트 앞 경비초소. 주민 4명이 기름난로 주변에 빼곡히 둘러앉아 있었다. 3.3㎡ 남짓한 초소 안에는 커피와 강냉이 귤 누룽지 등 먹을꺼리는 물론 휴지와 쓰레기봉투 같은 생필품도 있었다. 핫팩과 담요 등 보온용품도 보였다. 난로 위에는 물주전자가 끓고 있었다. 추워진 날씨 탓에 주민들은 두꺼운 외투에 모자 장갑으로 ‘중무장’했다. 이들의 시선은 아파트와 35m 떨어진 공터를 향했다. 이 모습은 지난해 10월부터 거의 하루도 빠지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
● “기숙사 절대불가” 감시하는 주민들
A아파트 주민들이 한겨울 ‘보초 근무’에 나선 이유는 저소득층 대학생들이 머물 공공 기숙시설인 ‘행복기숙사’ 건립을 막기 위해서다. 주민들은 초소에 머물다 기숙사 부지로 향하는 공사차량이 보일 때마다 재빨리 달려가 맨몸으로 막아선다. 주민 박모 씨(67·여)는 “주민 40명이 단톡방(카카오톡 단체 채팅방)에서 상황을 공유한다. 공사장비가 들어오면 출동하라는 안내방송을 한다”고 말했다. 박 씨는 “초소에 나오지 못하는 날도 아파트 베란다에서 공사 부지를 내려다보며 감시한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12월 중순에는 공사차량을 막아선 주민들과 시공사 관계자들이 마찰을 빚어 경찰까지 출동했다.
주민들은 대학생 기숙사가 마을 분위기를 해칠 것이라고 주장한다. 공사 부지 근처에 있는 초등학교 학생들의 면학분위기를 해칠 수 있다는 것이다. 한 주민은 “대학생들이 술 마시고 담배 피우는 모습을 내 손자가 본다고 생각하면 화가 난다”고 말했다. 다른 주민은 “대학생 기숙사 앞에는 콘돔이 하루에 몇 개씩 나온다고 한다. 기숙사가 생기면 한시도 마음을 놓지 못하고 살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공사차량이 오가면서 교통사고 위험이 높아지고 소음 탓에 정상적인 공부가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주민 김모 씨(59·여)는 “기숙사 건립 결정 후 집값이 1억 원이나 떨어졌다. 기숙사를 죽어도 짓겠다면 내가 먼저 죽을 것”이라고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일부 주민은 “기숙사에 공실이 생기면 재단 측이 숙박시설처럼 임대사업을 할 수도 있다. 그러면 동네가 모텔촌이 된다”고 걱정했다.
● 중재 노력에도 계속되는 ‘평행선’
재단 측은 주민 우려를 감안해 등·하교 시간에 중장비 이동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는 등타협을 시도하고 있다. 또 행복기숙사로 임대사업을 할 것이라는 의견도 사실과 다르다고 밝혔다. 재단 관계자는 “행복기숙사는 서울의 모든 대학생에게 기회가 제공된다. 수요가 공급보다 항상 많아 임대사업 자체가 불가능하다. 이미 운영 중인 홍제동 연합기숙사의 경우 늘 대기자가 많다”라고 말했다.
최지선 기자aurink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