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만 혁신기업이 3만달러 한국 이끈다]<4> 인재 빨아들이는 日 스타트업
지난해 12월 20일 방문한 일본 도쿄 시부야의 ‘리프마인드’ 사무실. 미국 영국 싱가포르 중국 등 다양한 국적의 엔지니어들이 모니터 앞에서 작업에 열중하고 있었다. 여기서 일하는 엔지니어(32명)의 절반은 외국인이었다. 글로벌 인재 집합소인 셈이다.
이 회사는 전력이 많이 들고 고가인 그래픽처리장치(GPU)나 클라우드 대신 작은 칩으로 인공지능(AI) 딥러닝을 구현한다. 리프마인드가 개발한 프로그래머블 반도체(FPGA·용도 변경이 가능한 반도체)는 메모리 사이즈가 500분의 1로 줄었으면서도 정확도는 기존 제품과 비슷하다. 속도는 중앙처리장치(CPU)보다 40배 빠르지만 전력은 적게 먹는다.
○ 혁신기술 보고 제 발로 오는 인재들
도쿄 중심지인 지요다구 오테마치에 위치한 또 다른 AI 스타트업 ‘프리퍼드네트워크스(PFN)’. 도쿄대 이공계 출신들이 설립한 AI 딥러닝 기술 개발 업체다. 오픈소스 소프트웨어인 체이너(Chainer)라는 독보적 AI 기술을 가진 곳으로 도요타, 인텔, 엔비디아 등 글로벌 기업들과 자율주행 산업용 로봇 분야 등에서 협업하고 있다. 지난해 8월 도요타자동차는 PFN에 105억 엔(약 987억 원)을 출자했다.
지난해 12월 22일 만난 하세가와 주니치 PFN 최고집행책임자(COO·56)는 “PFN 직원 110명 중 90%가 석·박사급 연구 인력으로, 딥러닝을 제대로 연구하고 운용할 줄 아는 슈퍼 엔지니어가 많은 것이 우리 회사의 경쟁력”이라고 말했다. 자율주행이나 자동화 기계를 만들 때 AI 알고리즘만 개발하는 게 아니라 실제로 기계를 만지면서 개발할 수 있는 환경에 매력을 느낀 이 분야 인재들이 모인다는 것이다.
○ 스타트업 무기는 스피드와 포지셔닝
도쿄 진구마에 사무실에서 만난 일본 드론 측량 1위 업체 ‘테라드론’의 세키 뎃페이 부사장(29)도 “4차 산업혁명 시대 스타트업의 최대 무기는 스피드와 포지셔닝”이라며 “대기업과 달리 의사결정권자가 직접 정보를 수집하기 때문에 의사결정 속도가 빠르다”고 말했다. 일본 스타트업의 역동성은 이미 성공한 기성 기업인들까지 움직였다. 테라드론과 테라모터스(전기스쿠터 제조업체)를 거느린 테라그룹에는 이데이 노부유키 전 소니 회장과 애플, 구글 임원 출신 등이 주주로 참여하고 있다.
올해 테라드론에 입사한 와세다대 출신 신충국 씨(26)는 “10년 전까지 명문대 출신들이 상사나 외자 기업으로 많이 갔지만 최근에는 우수한 인재일수록 100명 이하의 벤처로 가려는 사람이 늘었다”고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규모가 작아도 기술 경쟁력이 있고 직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큰 재량권을 주는 스타트업에 인재들이 몰린다는 얘기다.
테라드론의 모체인 테라모터스 시절 입사한 세키 부사장도 회사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돼 해외지사에 파견됐다. 현지 업체와 미팅을 통해 정보를 수집하고 협력모델을 찾는 데 최고경영자(CEO) 못지않은 재량권을 갖고 일했다. 이런 식으로 2016∼2017년 2년간 테라드론이 파트너십을 맺은 회사만 100개가 넘는다.
도쿄=신동진 기자 shin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