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고위급회담 ‘1·9 합의’]순탄하던 대화, 종결회의서 긴장감

같은 시각 판문점 평화의집 테이블에 마주 앉은 10명의 양측 대표단 사이엔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평창 겨울올림픽 참가 논의는 비교적 수월했다. 그러나 비핵화 언급과 군 통신선 재개 문제로 사달이 났다. “혼자 가는 것보다 둘이 가는 길이 더 오래 간다” “기대도 큰 만큼 회담을 확 드러내놓고 하는 게 어떠냐”는 등 첫 회의에서 호방하고 유쾌했던 북측 수석대표인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은 웃음기가 싹 가신 얼굴로 공동보도문을 읽었다.
얼굴색이 상기된 리 위원장은 공동보도문 낭독을 마친 후 결국 ‘핏대’를 세웠다. “회담장과는 달리 남측 언론에서 지금 북남 고위급 회담에서 그 무슨 비핵화 문제 가지고 회담을 진행하고 있다는 얼토당토않은 여론을 확산하고 있다”며 언성을 높인 것. 남측 대표단의 얼굴이 굳어졌다. 종결 발언을 마친 리 위원장에 조명균 통일부 장관도 지지 않았다. “남측 언론에서 비핵화 문제에 관심을 갖는 것은 우리 남측 국민들의 관심을 반영한 것”이라고 말하자, 리 위원장은 조 장관을 오래 응시했다.
‘돌부처’ 조 장관과 다혈질인 리 위원장의 논쟁은 이후에도 계속됐다. “(우리는) 열지 않고 열었다고 말하는 사람이 아니다. 남측은 아직 원인을 모르지 않느냐”고 리 위원장이 몰아붙이자 조 장관이 “내일부터는 완전하게 통화될 것이라는 사실만 이야기했지 다른 설명이 아니다”라고 수습했다.
격정 토론이 휩쓸고 간 회담장을 뒤로하고 리 위원장과 대표단, 수행단은 오후 9시 25분경 다시 군사분계선(MDL)을 넘어 판문각으로 돌아갔다. 이날만 3번째 넘나든 군사분계선이다.
759일 만에 남측 평화의집에서 마주한 남북의 대화는 하루 만에 총 8차례로 나뉘어 진행됐다. 정회시간을 제외한 회의시간은 264분으로 4시간 24분이었다. 가장 긴 회의가 65분이었고, 3차 대표 접촉은 15분 만에 끝났다.
이날 회의는 오전 10시에 시작됐다. 10명 모두 사전에 약속이라도 한 듯 짙은 푸른 계열의 넥타이 차림이었다. ‘평창수’가 준비된 회담 테이블 위에서 처음 오른 화제는 영하 7.5도의 혹한이었다. “자연계 날씨보다 북남관계가 더 동결 상태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리 위원장은 “두껍게 얼어붙은 얼음장 밑으로 거세게 흐르는 물처럼 북남 고위급 회담이라는 귀중한 자리가 마련됐다고 생각한다”며 희망을 비쳤었다. 6·15남북공동선언 당시를 아련히 추억하며 “온 겨레에게 새해 첫 선물 그 값비싼 결과물을 드리는 게 어떤가”라고 운도 뗐다. 조 장관이 ‘첫걸음이, 시작이 반이다’와 함께 상충되는 ‘첫술에 배부르랴’ 메시지를 건넨 건 결과적으로 일종의 예고편이었다.
판문점=공동취재단·신나리 journari@donga.com·홍정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