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 가수도 ‘크라우드 펀딩’
“나 ‘소나무’에 5만 원 넣었잖아.”
“그래? 난 ‘P.O.P’에 3만 원.”
길을 걷던 에이전트7(임희윤)은 20대 남녀가 나누는 대화에 귀가 번쩍 뜨였다. ‘혹시…가상통화?’ 안 그래도 요즘 비트코인으로 떼돈을 벌어 회사를 관뒀다는 전설에 흔들리던 참. 잘근잘근 손톱을 깨물었다. ‘이제라도 소나무코인, P.O.P코인에 (투자) 들어가야 하나…?’
하지만 아픈 과거가 떠올랐다. 에이전트5(김윤종)와 가상현실을 파헤치다 ‘멘털’이 털털 털렸던 트라우마. 7은 가상통화의 ‘가상’이란 단어에 현기증부터 올라왔다.
괜한 질문을 했다가 오늘도 신세대에게 면박만 받은 7. 탐색 결과, 이는 아이돌 가수 크라우드 펀딩 서비스라는 걸 알아냈다. 여기에 투자하면 대박 신화도 이룰 수 있는 걸까. ‘그렇다면 이것 역시 인류문화를 아이돌 펀딩으로 혼란시키려는 외계인의 음모?’
○ 아이돌도 크라우드 펀딩 시대
7은 요즘 뜬다는 케이팝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 ‘메이크스타’부터 접속했다. 먼저 걸그룹 ‘에이프릴’ 스페셜 화보집 제작 프로젝트에 참여해 보기로 했다. 참여 가능 상품은 금액에 따라 8종. 금액이 높을수록 더 많은 혜택을 준다. 이 세계에선 이를 ‘리워드(reward·보상)’라고 불렀다.
고심 끝에 3만9000원짜리를 선택했다. ‘디지털 명예제작자증서, 한정판 화보집 1권, 화보집 크레디트에 명예제작자 이름 올리기….’ 학교 노천극장 건립 때 돌 좌석에 기부자 이름을 새겨주는 식인가. 30만 원 투자하면 ‘스탬프 세트, 사인 폴라로이드 사진 세트. 친필카드엽서, 한정판 화보스티커세트’가 추가됐다. ‘선착순 60명에겐 에이프릴 멤버들이 직접 이름을 불러주는 생일축하 영상’도 눈에 띄었다. 화보집과 음반은 다른 데서도 살 수 있었지만 펀딩 참여자에게만 주어지는 특전이 확실히 달랐다.
메이크스타의 이승남 이사를 찾았다. “2015년 12월 서비스를 시작해 지금까지 프로젝트 100여 건을 진행했습니다. 회원 70만 명 가운데 유료 구매 고객만 2만 명이 넘습니다. 약 70%는 미국(30%)을 포함한 해외 사용자입니다.”
“펀딩 참여자의 30%가 서비스를 통해 그룹을 접했다고 할 정도니까, ‘이런 그룹이 데뷔했다’ 하는 홍보 창구로도 쓰이죠.”
○ 텀블벅, 킥스타터, 인디고고… 국내외에서 성장 중인 아티스트 크라우드 펀딩
가수에 대한 크라우드 펀딩 바람은 해외에서 먼저 일어났다. 미국의 대표적 크라우드 펀딩 서비스 ‘킥스타터’의 음악 분야가 필두였다. TLC, 드 라 솔 같은 유명 그룹이 킥스타터를 통해 자금을 모아 컴백했다. 2015년에는 킥스타터 펀딩을 통해 발매한 음반으로 그래미상 후보에 오른 팀이 리 스크래치 페리 등 7팀이나 됐다.
킥스타터 이후 최근까지 인디고고와 아티스트셰어, 패트리온, 플레지뮤직 등 음악에 좀 더 초점을 맞춘 서비스가 속속 생겨나 성공을 거뒀다. 국내에서도 텀블벅이 영화와 연극, 음반 분야에서 크라우드 펀딩 서비스를 진행하고 있다.
아이돌 전문 비평 웹진 ‘아이돌로지’의 미묘 편집장을 찾았다.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동안 멤버들이 계속 인사 동영상을 올려줍니다. 모닝콜 음성 메시지를 해주는 경우도 있죠. 골수팬들에게는 좀 더 친밀하고 특별한 경험을 제공하고, 가수 입장에서는 방송 활동으론 제한적인 홍보 활동을 할 수 있죠. ‘프로듀스 101’ 같은 TV 오디션 프로그램의 대안 역할로도 주목됩니다. 방송국이 판을 깔아주는 게 아니라 ‘내가 내 아이돌을 직접 찾아서 키워낸다’는 특별한 느낌을 줄 수 있어 앞으로도 성황을 이룰 것 같습니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