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진하는 중국 벤처/상]2018 라스베이거스 점령하다
중국 드론 업체 ‘파워비전’이 개발한 달걀형 드론 ‘파워 에그(PowerEgg)’. 평소엔 달걀 모양(작은 사진)이었다가 비행할 때 날개를 편다. 리모컨에 손가락을 댄 상태에서 손을 움직이면 드론이 동작을 감지해 손의 방향을 따라 움직이는 기술도 적용됐다. 오른쪽 사진은 중국 헬스케어 업체 관계자가 CES 현장에 전시된 스마트 밴드 제품을 살펴보는 모습. 라스베이거스=김지현 jhk85@donga.com·김재희 기자
세계 최대 정보기술(IT)·가전전시회 ‘CES 2018’이 개막한 9일(현지 시간). 로봇과 드론, 인공지능(AI) 등 4차 산업혁명 관련 부스들이 밀집한 미국 라스베이거스 컨벤션센터 사우스홀에 세계의 눈이 쏠렸다. 사우스홀은 통상 규모가 작은 업체의 부스가 설치된다. 규모가 작은 대신 도전적이고 성장세가 높은 벤처와 스타트업이 많아 CES에서 혁신 기업의 집결지로 꼽힌다.
이 같은 차이나 벤처를 가능케 한 배경에는 중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 정책이 있었다. 현장에서 만난 중국 업체 관계자들은 특히 선전(深(수,천))시 차원의 집중적인 육성 정책 덕에 드론 산업이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다고 입을 모았다. 선전은 DJI가 처음 드론 사업을 시작한 곳이다. 선전시는 DJI의 성공을 경험하면서 본격적으로 드론 부품 및 제조업체들을 키워 왔다. 현재 선전시에서는 경찰, 소방서 등 정부 기관뿐만 아니라 방재, 보안 등 민간 영역에서도 드론을 상용화해 사용하고 있다.
한국의 상용 드론 시장 규모는 지난해 100억 원대 규모로 집계됐다. 반면 지난해 이미 100억 위안(약 1조7000억 원) 규모를 돌파한 중국 상용 드론 시장은 2020년이면 6배로 늘어나 600억 위안을 돌파할 것으로 전망된다.
CES에 참여한 국내 드론 업체 바이로봇의 지상기 대표는 “중국은 선전시 지원 덕에 센서와 모터, 배터리 등 각종 부품 제조사들까지 성장하면서 자연스레 ‘드론 서플라이 체인’이 만들어졌다”며 “한국에서 드론 한 대를 만들려면 부품 조달에만 3개월 이상 걸리는데 중국에서는 일주일 이내에 가능하다”고 했다. 부품을 싸고 빠르게 조달할 수 있다 보니 중국 업체들의 가격 경쟁력도 높아졌다.
한국 국토교통부도 부랴부랴 지난해 12월 ‘드론산업 발전 기본 계획’을 내놓고 드론산업을 적극 육성하겠다고 밝혔지만 규제 개혁 등 민간 산업 발전 계획은 여전히 부족하다는 게 현장 목소리다. 진정회 엑스드론 대표는 “일단 드론을 자주 띄워야 산업이 커질 텐데 여전히 공역 규제가 많다”며 “정부가 지정한 테스트베드 7개 공역 외에는 아예 비행이 금지됐거나 복잡한 허가 절차를 거쳐야 하다 보니 산업이나 서비스 용도의 공역으로 활용하는 것이 어렵다”고 했다.
디지털 헬스케어 업체들이 모여 있는 샌즈 테크 웨스트 전시장도 비슷한 모습이었다. 심장박동과 혈압 등을 모니터링해 주는 스마트 헬스케어 관련 부스는 대부분 중국 업체들이었다. 스마트 웨어러블 업체인 ‘두 인텔리전트’의 판매 담당자는 “올해가 두 번째 CES 참가”라며 “2012년에 세워진 신생 회사지만 30개국에 수출 중”이라고 했다.
중국 전자업체인 창훙은 전시장에 ‘헬스케어존’을 별도로 설치하고 스마트폰과 연동해 쓸 수 있는 ‘스마트 청진기’와 ‘스마트 약통’ 등을 공개했다. 창훙 관계자는 “심장박동 체크부터 내용 분석까지 의사 대신 해준다고 보면 된다”고 소개했다. 국내에선 이 같은 원격 서비스가 어렵다.
중국은 정부의 의료산업 규제 완화 분위기 속에 디지털 헬스케어 산업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글로벌 컨설팅 업체인 보스턴컨설팅그룹은 중국 디지털 헬스케어 서비스 시장 규모가 2014년 30억 달러에서 2020년 1100억 달러 규모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현장에서 만난 한국 업체 관계자는 “헬스케어존에 중국 업체가 너무 많아 우리도 놀랐다”며 “건강정보를 측정해 전송하는 스마트밴드 시장은 이미 중국의 가격 경쟁력에 밀려 한국 업체들이 설 자리가 없다”고 한탄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의료기기 전문 업체가 되겠다며 사업을 시작했는데 신제품을 만들 때마다 건당 3000만 원씩, 길게는 3개월씩 걸리는 식품의약품안전처 인증이 발목을 잡는다”며 “지금은 체중계나 만드는 소형가전 업체에 가깝지만 의료기기 업체로서의 꿈은 포기하고 싶지 않다”고 하소연했다.
라스베이거스=김지현 jhk85@donga.com·김재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