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첫 겨울올림픽 출전 이끈 전이경 쇼트트랙 감독
싱가포르 역사상 첫 겨울올림픽 출전을 이끈 전이경 싱가포르 쇼트트랙 대표팀 감독(위 사진 뒤)과 여자 쇼트트랙 선수 샤이엔 고가 10일 경기 고양 어울림누리 빙상장에서 함께 훈련을 하고 있다. 한국 선수 중 가장 많은 겨울올림픽 메달(5개)을 가진 전 감독은 겨울스포츠 불모지 싱가포르의 지도자로 평창 무대를 밟게 됐다. 아래 사진은 1998 나가노 겨울올림픽 쇼트트랙 여자 3000m 계주에서 금메달을 딴 뒤 한국 대표팀 동료들과 기뻐하고 있는 전이경 감독(오른쪽에서 두 번째). 고양=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동아일보DB
겨울스포츠 불모지에서 희망의 싹을 틔웠다. 열대의 나라 싱가포르 역사상 처음으로 겨울올림픽 진출을 이끈 전이경 싱가포르 쇼트트랙 대표팀 감독(42) 이야기다. 겨울올림픽 두 대회(1994년 릴레함메르, 1998년 나가노) 연속 2관왕을 차지한 전 감독은 여전히 한국 선수 중 가장 많은 겨울올림픽 메달(금 4, 동메달 1개)을 갖고 있다. 그런 전 감독이 2018 평창 겨울올림픽에서 싱가포르 사상 첫 출전 선수의 역사를 쓰게 된 여자 쇼트트랙 1500m 샤이엔 고(19)의 지도자로 평창 무대를 밟는다. 딱 20년 만에 다시 겪게 된 올림픽 선수촌 생활이 전 감독 앞에 기다리고 있다.
○ 올림피안의 책임감으로
2015년 1월 둘째 아이 유학을 위해 싱가포르로 간 전 감독은 현지 빙상연맹의 부탁으로 그해 10월 감독직을 수락했다. 전 감독은 “내 아이를 키우러 싱가포르에 왔다가 이곳의 어린 선수들을 가르치게 되니 기분이 묘했다. ‘그 커리어에 왜 싱가포르 대표팀을 맡느냐. 돈을 얼마나 받기에 그러느냐’고 수군거리는 사람도 많았다”고 말했다. 이어 “(겨울스포츠가 약한) 동남아 팀이라 맡았다. 올림피안이자 빙상인의 한 사람으로서 싱가포르 팀을 키워보고자 감독을 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수락은 했지만 말처럼 쉽지만은 않았다. 전 감독은 “싱가포르에 올림픽 규격에 맞는 아이스링크는 단 하나다. 그마저도 시간당 이용가격이 1000싱가포르달러(약 80만 원)나 되다보니 쇼트트랙 선수들이 빙상 훈련을 하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한국 대표팀 선수들이 하루에 소화하는 빙상훈련(4시간)을 일주일에 가까스로 채우는 수준.
전 감독은 “부족한 훈련은 지상에서 대신한다. 내가 와서 한 건 훈련시간을 늘린 것밖에 없다. 스스로 즐거워서 운동을 할 수 있게끔 잔소리하는 정도”라고 겸손하게 말했다. 그러나 “아이스링크가 하나밖에 없으니 뭘 할 수가 없다. 아무래도 메달이라도 따야 빙상장이 늘어날 것 같다”며 웃는 모습에선 영락없이 싱가포르 빙상을 향한 애정이 느껴졌다. 그런 전 감독에게 연맹은 장기계약이라는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 언더도그의 반란 꿈꾸는 샤이엔
아이스하키에서 전향해 쇼트트랙 선수로 올림피안이 된 샤이엔도 꿈을 꾸는 건 마찬가지다. 함께 뛴 선수들이 줄줄이 넘어지거나 실격되면서 행운의 금메달을 목에 건 호주의 스티븐 브래드버리(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남자 1000m)를 좋아한다는 샤이엔은 “브래드버리처럼 언더도그(약자)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 언젠가 브래드버리처럼 메달을 딸 수 있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서로의 인터뷰 장면을 신기한 듯 바라보던 전 감독과 샤이엔은 평창의 꿈을 위해 다시 빙상장으로 향했다.
고양=강홍구 기자 windu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