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칼 대신 한글로 독립정신 일깨우다 인촌 선생, 맞춤법 제정 기금 지원… 일제 조선어 교육 방해 정면 비판
조선어학회의 한글맞춤법 통일안 공포 6개월 전 처음 적용하기 시작한 동아일보 1933년 4월 1일자. 동아일보DB
오늘날 한글맞춤법은 1933년 10월 조선어학회가 제정, 공포한 ‘한글맞춤법 통일안’을 수정한 것이다. 이 통일안을 가장 먼저 사용한 신문이 동아일보다. 동아일보는 공포 6개월 전부터 거의 완성된 이 통일안을 적용해 새 활자로 신문을 발간했다. 당일 부록으로 ‘신철자편람(新綴字便覽)’도 함께 보급했다. 동아일보가 앞서 나가자 다른 신문이나 잡지도 뒤따라 새 맞춤법을 적용하기 시작했다.
우리말과 한글을 바로 세우는 일은 ‘총칼 없는 독립운동’이었다. 동아일보는 “철자법을 통일 확장하는 것은 우리 민족문화운동의 기초 공사”라고 봤다. 인촌 김성수 선생이 맞춤법 통일안 제정에 필요한 기금을 지원하기도 했다. 1929년 조선어사전편찬위원회를 결성할 때도 발기인 108명 가운데 동아일보 전현직 인사 10여 명이 참여했다.
“글을 배우러 오는 아이들은 거의 날마다 늘었다.”
심훈이 1935년부터 이듬해까지 동아일보에 연재한 ‘상록수’의 한 구절이다. 동아일보의 한글 사랑은 ‘브나로드’ 운동으로 꽃을 피웠다. 문맹률이 약 80%에 이르던 현실에서 동아일보는 1931년부터 ‘브나로드’ 운동을 벌이며 농촌계몽과 한글 보급에 앞장섰다. 동아일보가 배부한 ‘한글공부’ ‘신철자편람’ 등의 교재만 모두 210만 부에 달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