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익은 교육정책, 반대 여론이 제동
지난해 12월 중순 초등 1, 2학년에 이어 27일 유치원·어린이집 영어수업(방과후 및 특별활동) 금지 방침이 발표된 이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이를 반대하는 청원이 150여건 올라왔다.
반발이 거세지자 이튿날 교육부는 부랴부랴 “확정된 바 없다”는 자료를 내놨다. 올해 들어서도 “부잣집 아이들만을 위한 정책”이라는 학부모들의 비난 여론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14일 정부 고위 관계자는 “아무리 옳은 정책이라도 국민이 수용할 수 있어야 좋은 정책”이라며 “국가교육회의에서 정책 공급자가 아닌 수요자의 시각에서 1년 동안 치밀하게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유치원·어린이집 영어수업 금지 방침 철회까지 논의 테이블에 올려놓겠다는 뜻이다. 다만 선행학습금지법을 직접 적용받는 초등 1, 2학년 방과후 수업 폐지는 번복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 금지→유예→원점 재검토, 후퇴 배경은
그동안 교육부는 보건복지부와 이르면 올해 3월부터 유치원·어린이집 영어수업 금지 방안을 두고 협의해 왔다. 복지부는 관련 법령 개정까지 시간이 걸리고 한국어린이집연합회 등이 반발하고 있어 당장 시행은 어렵다는 입장이었다.
학부모들도 “월 3만 원에 영어교육을 받을 수 있는데 100만 원짜리 영어 학원으로 가란 말이냐”라고 반발했다. 교육부는 원칙적으로 금지 방침은 밀고 가되 시행은 1년 유예하는 방향으로 한 발짝 물러섰다.
○ ‘김상곤표’ 교육정책 피로감 누적
지난해 8월 김 장관이 취임한 이후 △202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전 과목 절대평가 전환 △자율형사립고·외국어고·국제고 폐지 △초등 1, 2학년과 유치원·어린이집 영어수업 금지 등을 강행하면서 교육 현장 곳곳에서 불협화음이 발생하고 있다. 고교-대학으로 이어지는 아이들의 ‘줄세우기 경쟁’을 완화시키겠다는 정책 취지와는 달리 오히려 서민들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어서다.
올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교육정책이 오락가락하면서 민심 이반에 대한 우려도 커졌다. 여당 관계자는 “지역구를 가 보면 학부모들이 낮밤으로 뒤바뀌는 교육정책에 대한 불만이 크다”고 전했다.
학부모 정모 씨(41·여)는 “자사고·외고 폐지 정책으로 도리어 강남 8학군의 집값이 뛰었고, 유치원·어린이집 영어교육 금지로 학원을 보내야 할 처지가 된 서민들의 박탈감이 크다”고 말했다. 공교육 내실화가 뒷받침되지 않은 상황에서 규제 위주 정책이 사교육을 받을 수 없는 계층의 기회를 빼앗고 있다는 설명이다.
○ 설익은 정책 발표로 교육 현장 혼란 가중
교육정책이 이념적인 방향성을 갖고 정교한 조율을 거치지 않은 채 발표돼 현장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정부가 강남 집값을 잡기 위한 부동산 강경책을 잇달아 발표했지만 자사고·외고가 폐지되면 강남 8학군이 부활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정책 효과를 반감시키고 있는 게 대표적인 사례다.
이번 영어수업 금지만 해도 무조건 영어 선행학습을 막겠다는 당위적인 가치가 정책적인 판단을 왜곡시켰다. 지난해 9월 초등 1, 2학년 방과후 영어수업 금지에 대한 교육계 의견을 수렴하는 자리에서 ‘학부모 71.8%가 유지에 찬성한다’는 설문조사가 제시됐지만 결국 금지 강행이 결정됐다. 이번 영어수업 금지로 인한 현장의 반발은 예고된 셈이다.
교육계 관계자는 “이번 영어수업 금지 결정은 이명박 정부 영어몰입교육이 적폐라고 보는 진보 진영의 시각이 반영된 것”이라며 “교육을 한 번에 바꾸겠다는 조급증을 버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우경임 기자 woohah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