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계 출산율이 4명에 이르는 이집트는 어딜 가도 아이들이다. 동아일보DB
박민우 카이로 특파원
근처 열쇠수리공을 수소문해 2시간여를 기다렸다. 밤 11시가 돼서야 2인조 열쇠수리공이 도착했다. ‘부자지간’인 이 둘은 손발이 척척 맞았다. 뚝딱뚝딱 문을 해체하더니 새 열쇠구멍을 달았다. 더 놀라웠던 건 조수 역할을 맡고 있는 아들의 나이가 여덟 살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손톱에 검정 기름때를 잔뜩 묻힌 채 묵묵히 아빠를 돕는 꼬마가 기특하면서도 한편으론 마음이 짠했다.
이집트에서는 부모와 함께 일하는 어린이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과일 봉지를 들고 맨발로 길거리에 나와 호객하는 아이들, 작은 손에 커다란 공구를 들고 자동차 정비소에서 타이어 펑크를 때우는 아이들의 모습은 이집트의 흔한 풍경 중 하나다.
인구 폭증은 아프리카 전체의 문제다. 유엔 세계인구전망에 따르면 현재 54개국 12억5000만 명인 아프리카 인구는 2050년 두 배로 늘어 세계 인구의 4분의 1을 차지하게 된다. 아프리카 대륙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나이지리아(1억9000만 명)는 2050년 인구가 4억 명까지 늘어나 중국, 인도에 이어 3위의 인구 대국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발간한 ‘월드팩트북’을 보면 2017년 합계출산율(추정치) 상위 30위는 아프가니스탄(10위·5.12명)과 동티모르(16위·4.79명)를 제외하면 모두 아프리카 국가가 차지하고 있다. 합계출산율 5.71명으로 7위인 우간다에 사는 여성 매리엄 나바탄지 씨는 12세에 결혼해 40명 이상의 자녀를 낳은 것으로 알려졌다.
반대로 한국에선 극심한 저출산이 문제다. 지난해 한국의 합계출산율 추정치는 1.26명으로 224개국 가운데 219위다. 합계출산율이 1.3명 미만이면 초저출산 국가로 분류되는데 2002년 이후 16년 동안 초저출산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저출산 추세는 한 번 고착화하면 되돌리기 힘든 악순환에 빠진다. 저출산 시대에 태어난 세대가 성장하면 출산 가능 연령대 인구가 줄고 결과적으로 출생아 수가 줄어든다. 지난해 한국의 출생아 수는 사상 처음 40만 명 밑으로 떨어져 30만 명대 중반에 머물 것으로 추산된다. 2002년 이후 태어난 초저출산 세대가 20대가 되기 전에 합계출산율이 크게 반등하지 않으면 초저출산 국가에서 탈출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26일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간담회를 주재하면서 “지금이 심각한 인구 위기 상황을 해결할 마지막 골든타임”이라고 한 것도 이 같은 상황 인식 때문이다.
출산은 인류의 축복이다. 그런데 먹고사는 문제에 부딪혀 지구촌 어느 나라는 너무 많이 낳아서 걱정이고, 어느 나라는 거의 낳지 않아서 걱정이다. 이보다 슬픈 아이러니가 또 있을까.
박민우 카이로 특파원 minw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