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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이슈/박민우]이집트의 다출산과 한국의 저출산

입력 | 2018-01-15 03:00:00


합계 출산율이 4명에 이르는 이집트는 어딜 가도 아이들이다. 동아일보DB

박민우 카이로 특파원

이집트에 와서 수많은 문을 들락거렸지만 디지털 도어록을 본 적이 한 번도 없다. 우리 집 대문도 열쇠로 여닫는다. 이게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아 불안했는데 ‘머피의 법칙’처럼 일이 터지고 말았다. 문이 닫히면 안에서 자동으로 잠기는데 집 안에 열쇠를 두고 나온 것이다!

근처 열쇠수리공을 수소문해 2시간여를 기다렸다. 밤 11시가 돼서야 2인조 열쇠수리공이 도착했다. ‘부자지간’인 이 둘은 손발이 척척 맞았다. 뚝딱뚝딱 문을 해체하더니 새 열쇠구멍을 달았다. 더 놀라웠던 건 조수 역할을 맡고 있는 아들의 나이가 여덟 살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손톱에 검정 기름때를 잔뜩 묻힌 채 묵묵히 아빠를 돕는 꼬마가 기특하면서도 한편으론 마음이 짠했다.

이집트에서는 부모와 함께 일하는 어린이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과일 봉지를 들고 맨발로 길거리에 나와 호객하는 아이들, 작은 손에 커다란 공구를 들고 자동차 정비소에서 타이어 펑크를 때우는 아이들의 모습은 이집트의 흔한 풍경 중 하나다.

절대빈곤율(가처분소득이 최저생계비에 못 미치는 가구의 비율)이 30%에 달하는 이집트에서 아이들은 양육 대상인 동시에, 중요한 생계 수단이다. 과거 우리나라가 그랬듯 연금 등 사회복지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이집트의 부모들은 여러 명의 자식이 자신의 노후를 책임져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집트 통계청(CAPMAS)에 따르면 2017년 6월 기준 이집트 인구 9330만 명으로 1980년(4410만 명)의 두 배 이상으로 늘었다. 현재 이집트 인구의 40.7%(3800만 명)가 18세 미만이다. 합계출산율(여성 한 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자녀의 수)은 4명(이집트 통계청 발표 기준).

이집트가 지금의 합계출산율을 유지할 경우 2030년 인구는 1억2800만 명에 이른다. 아부 바크르 엘겐디 통계청장은 이집트의 인구 증가 속도를 “재앙적”이라는 단어로 표현했고, 압둘팟타흐 시시 대통령 역시 “테러리즘만큼이나 중대한 위협”이라고 규정했다. 경제 성장이 인구 증가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빈곤이 심화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집트 정부는 “둘이면 충분하다”는 슬로건을 내걸고 산아제한 캠페인을 벌이고 있지만 이렇다 할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인구 폭증은 아프리카 전체의 문제다. 유엔 세계인구전망에 따르면 현재 54개국 12억5000만 명인 아프리카 인구는 2050년 두 배로 늘어 세계 인구의 4분의 1을 차지하게 된다. 아프리카 대륙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나이지리아(1억9000만 명)는 2050년 인구가 4억 명까지 늘어나 중국, 인도에 이어 3위의 인구 대국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발간한 ‘월드팩트북’을 보면 2017년 합계출산율(추정치) 상위 30위는 아프가니스탄(10위·5.12명)과 동티모르(16위·4.79명)를 제외하면 모두 아프리카 국가가 차지하고 있다. 합계출산율 5.71명으로 7위인 우간다에 사는 여성 매리엄 나바탄지 씨는 12세에 결혼해 40명 이상의 자녀를 낳은 것으로 알려졌다.

반대로 한국에선 극심한 저출산이 문제다. 지난해 한국의 합계출산율 추정치는 1.26명으로 224개국 가운데 219위다. 합계출산율이 1.3명 미만이면 초저출산 국가로 분류되는데 2002년 이후 16년 동안 초저출산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국의 저출산은 아프리카와 전혀 다른 차원의 먹고사는 문제에서 비롯됐다.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청년들이 결혼을 미루고, 교육비와 주거비를 감당하지 못하는 부부는 출산을 꺼린다. ‘경력 단절’과 ‘육아 독박’을 강요하는 차별적인 사회 분위기도 워킹맘의 출산을 주저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저출산 추세는 한 번 고착화하면 되돌리기 힘든 악순환에 빠진다. 저출산 시대에 태어난 세대가 성장하면 출산 가능 연령대 인구가 줄고 결과적으로 출생아 수가 줄어든다. 지난해 한국의 출생아 수는 사상 처음 40만 명 밑으로 떨어져 30만 명대 중반에 머물 것으로 추산된다. 2002년 이후 태어난 초저출산 세대가 20대가 되기 전에 합계출산율이 크게 반등하지 않으면 초저출산 국가에서 탈출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26일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간담회를 주재하면서 “지금이 심각한 인구 위기 상황을 해결할 마지막 골든타임”이라고 한 것도 이 같은 상황 인식 때문이다.

출산은 인류의 축복이다. 그런데 먹고사는 문제에 부딪혀 지구촌 어느 나라는 너무 많이 낳아서 걱정이고, 어느 나라는 거의 낳지 않아서 걱정이다. 이보다 슬픈 아이러니가 또 있을까.
 
박민우 카이로 특파원 minw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