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년(1592, 선조25) 여름 6월 19일, 내가 왜적을 피해 재산(才山) 동쪽 금곡리(金谷里)에 가 있을 때의 일이다. 마을 사람 김만손(金晩孫)의 소가 송아지를 데리고 풀밭에서 풀을 뜯고 있었다. 이때 호랑이가 포효하며 나타나 송아지를 물어가려 하자 여러 마리의 암소가 사방에서 쫓아와 덤벼들었다. 호랑이가 버티지 못하고 마침내 송아지를 내버려 둔 채 도망갔다.
배용길(裵龍吉, 1556~1609) 선생의 ‘금역당집(琴易堂集)’ 제4권에 실린 ‘의로운 어미 소 이야기(義?說)’입니다. 선생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켜 왜적을 물리치는 데 힘썼으며, 뒷날 조정에서 왜적과 화친하자는 논의가 있자 상소를 올려 화친의 부당함을 아뢰면서, 임금이 직접 정벌에 참여해 병사들의 사기를 북돋울 것을 청하셨던 분입니다.
재주라고는 들이받는 것밖에 없을 어미 소들이 새끼를 지키고자 힘을 합쳐 저 무시무시한 호랑이를 물리쳤습니다. 이 놀라운 소식을 전해들은 선생은 크게 탄식하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아, 사람이 되어 오히려 금수만도 못하단 말인가.(嗚呼! 人而反不如禽獸乎?)” 탄식의 이유는 곧 밝혀집니다.
오늘날 동래(東萊)가 왜적에게 함락될 때 병마절도사가 구원하지 못하고 도주하자 주현(州縣)의 수령들은 소문만 듣고도 무너져 달아났으니, 이 암소처럼 자신을 돌보지 않고 분연히 일어나 싸운 사람은 없었다. 그러니 이빨을 검게 물들인 왜적들이 20여 일 만에 왕성(王城)을 무인지경에 들어가듯 곧장 쳐들어 간 것도 당연하다. 아, 사람들이 서로 헐뜯고 비방할 때면 반드시 ‘소나 말이 사람의 옷을 입었다.’라고 하면서 자기들이 하는 짓은 오히려 소나 말에게도 부끄러우니 어찌 통탄스럽지 아니한가.(嗚呼! 人之相訾謷者, 必曰‘馬牛襟裾’, 而所行反有愧於馬牛, 豈不痛哉?)
조경구 한국고전번역원 선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