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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족, 고구려와 관련 없어”… 中 박물관, 버젓이 역사 왜곡

입력 | 2018-01-17 03:00:00

동북아역사재단, 동북3성 박물관 분석
중국의 동북공정 주장 다수 발견… 고조선 부정… 단군조선 언급도 안해
한국 고대사 계통체계 전면적 무시… 中박물관 年7억명 방문… 왜곡 우려




중국 랴오닝성 톄링시에 위치한 톄링 박물관에 전시된 고구려 관련 설명 자료들. “조선족은 고구려 고족과는 관계가 없다”는 잘못된 정보(첫번째 사진)가 버젓이 전시돼 있다. 부여-고구려-옥저는 예맥의 역사로, 기자조선은 한족 (漢族)으로 분류하며 고조선의 계통을 인정하지 않는 자료도 전시하고 있다. 동북아역사재단 제공

중국이 문화산업 발전이란 명목으로 전국에 박물관을 급속히 늘리는 가운데, 많은 현지 전시들이 고구려사(史)를 중국 역사로 표현하고 있는 사실이 확인됐다.

동북아역사재단은 최근 논문 ‘박물관 전시를 통해 본 중국의 고구려사 인식’에서 “중국 지안(集安) 박물관과 톄링(鐵嶺) 박물관, 랴오닝(遼寧)성 박물관 등 동북 3성 주요 박물관을 직접 답사해 분석한 결과, 2007년 공식적으로 종료된 것으로 알려진 ‘동북공정’의 주장이 다수 발견됐다”고 밝혔다.

○ 진화하는 중국의 동북공정

“우리나라(중국) 경내의 조선족은 19세기말 조선반도에서 이주해 온 외래 민족이다. 56개 중화민족 가운데 역사가 가장 짧은 하나의 민족으로, 고구려 고족과는 연속 관계가 없다.”

중국 랴오닝성 톄링시에 위치한 톄링 박물관. 최근 이 박물관 1층에 있는 ‘고구려 전시실’에 서술된 글이다. 고구려가 우리 민족인 조선족의 선조가 아니라는 논리로, 교묘히 한국사에서 떼어 놓고 있다. 이곳은 ‘애국주의 교육기지’로 지정된 시립박물관. 중국 청소년 역사교육 현장으로 자주 활용된다.

고조선 역사를 부정하는 서술도 발견됐다. 동북지역의 고족(古族) 계통을 보여주는 전시에서 단군조선은 아예 언급도 하지 않았다. 기자조선을 한족으로, 부여-고구려-옥저는 예맥의 역사라고 분류했다. 재단 관계자는 “고조선-부여-삼국-고려-조선 등으로 이어지는 한국 고대사의 계통체계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광개토대왕릉비가 있는 지안시의 지안 박물관도 상황은 심각했다. 지안은 고구려 수도였던 국내성이 자리했던 땅. 지안 박물관은 고구려 유물 1000여 점을 보유해 ‘고구려 문물 전시 중심’으로 스스로 표기할 정도다.

그런데 이 박물관은 고구려 건국 과정을 “기원전 108년 한(漢)무제가 한사군을 설치할 때, 고구려인이 모여 사는 구역에 고구려현을 설치했다. 고구려현 경내에서 주몽이 고구려를 건국했다”고 명시했다. 압록강 인근에서 활동하던 주몽 등이 현도군의 세력을 몰아내고 고구려를 건국했다는 우리 학계의 정설과 상충한다. 또 “고구려 멸망 이후 유민들이 한족(漢族)과 기타 민족으로 융합됐다”며 이후 유민들의 부흥운동인 보덕국, 발해와 고려 건국 등의 역사는 일체 다루지 않는 것으로 확인됐다.

○ 중국 정부 차원의 개입 의혹도


국내 학계에선 중국 박물관의 이 같은 역사 인식에는 중국 정부의 정책적 판단이 배경으로 자리 잡고 있다고 분석한다.

2015년 10월 중국 공산당은 제18기 5차 중앙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중공 중앙 국민경제와 사회발전 제13차 5개년 규획’을 공개했다. 이 규획에는 문화산업을 포함하는 ‘서비스산업 발전’이 5대 발전 이념에 포함돼 있다. 세부 정책에는 “전국의 국가박물관을 중화문명의 애국기지로 활용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현재 중국 전역엔 5000개가량의 국공립 박물관이 운용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동북공정의 주장을 자국 애국심 고취에 적극 이용하겠다는 심산이다.

문제는 동북공정의 논리와 꼭 닮은 주장들이 여과 없이 전시될 경우, 양국의 역사 갈등으로 번질 불씨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해외 관광객들도 상당수 마주할 역사 정보를 우리로선 마냥 무시할 순 없는 노릇이다.

동북아역사재단 관계자는 “중국 박물관을 찾는 방문자가 매년 7억 명이 넘는다는 통계가 있을 정도로 이들의 역할과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며 “중국 국가박물관을 중심으로 고구려사의 왜곡된 정보가 전파될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