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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이건혁]공무원들의 ‘낙하산 공모’

입력 | 2018-01-18 03:00:00


이건혁 경제부 기자

최근 산업통상자원부 현직 국장급 인사인 K 씨(47)가 검찰에 구속됐다. 감사원 감사 결과 채용비리로 확인된 2016년 10월 정하황 전 한국서부발전 사장 선임 과정에 부당하게 개입한 혐의를 받고 있다. K 씨는 당시 공공기관 인사 관련 업무를 하고 있었다.

앞서 지난해 11월 K 씨의 부하 직원이자 실무를 담당했던 서기관급 직원 S 씨도 이 일로 구속됐다. S 씨는 정 전 사장을 면접에서 탈락시킨 서부발전 임원추천위원회(임추위)에 연락해 “아쉽다”는 취지의 말을 남겼다고 한다. 당시 정 전 사장은 청와대 실세가 미는 인사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S 씨의 연락을 받은 임추위 간사는 정 전 사장의 면접 점수를 조작했고 면접 합격 명단에 포함된 정 전 사장은 결국 사장으로 선임됐다. 검찰은 K 씨가 S 씨와 범죄를 공모한 것으로 보고 있다.

S 씨에 이어 K 씨가 구속되자 공무원들은 충격을 받았다. 산업부는 물론이고 다른 중앙부처에서도 “둘 다 구속될 줄 예상도 못 했다”는 반응이 나왔다.

인사 개입은 범죄행위고 처벌은 불가피하다. 하지만 ‘윗선’이 특정 인사를 선택해서 공공기관 임원으로 앉히라고 하면 일선 공무원은 이를 거부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이런 일은 정권을 가리지 않고 발생해 이미 관행으로 굳어졌기 때문에 K 씨와 S 씨의 구속은 충격으로 받아들여졌다.

당장 공공기관 인사 업무를 처리해야 하는 공무원들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혼란에 빠졌다. 청와대 혹은 고위층의 의사가 반영된 인사들은 지금도 내려오고 있는데 이를 받아줄 수도, 거부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중앙부처의 인사 담당 서기관은 “윗분의 뜻을 따르면 언젠가 감방에 가겠고, 거절하면 한직이나 집에 가겠지”라며 헛웃음을 지었다.

어떤 사람들은 일선 공무원들이 상사의 부당한 명령을 거부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말하지만 이는 공무원 사회의 현실을 모르는 얘기다. 어떤 국·과장들이 청와대나 장차관의 지시를 거부하고 자리를 유지할 수 있겠는가. 최근 사석에서 만난 한 고위 관료는 “공무원은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의 뜻을 따르기 위한 손발이다. 머리(청와대)의 의도대로 움직일 수 있는 것도 능력”이라고까지 말했다.

이런 문제의 근본 원인은 낙하산 인사다. 현 정권이 들어선 이후에도 낙하산 인사 논란이 불거진 자리가 한두 곳이 아니다. 앞으로가 더 문제다. 지난해 말 현재 공공기관 330곳 중 약 90곳의 수장 자리가 비어 있거나 임기 만료를 앞두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 등 국책연구원장 자리도 곳곳이 공석이며, 공공기관 감사나 사외이사 등 알짜배기 자리도 다수 비어 있다. 이미 여러 공공기관 임원 후보로 현 정권 또는 문재인 대통령과 인연이 있는 인사들이 거론되고 있다. 낙하산 논란은 당분간 계속될 수밖에 없다.

역대 정권은 ‘자기 사람’을 챙기다가 낙하산 근절에 실패했다. 문재인 정부는 대선 승리에 기여한 사람들에게 자리로 보상하려는 유혹부터 끊어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낙하산 인사는 사라지지 않는다. 정권이 바뀌어도 달라진 게 없다면 ‘촛불 혁명’이 무슨 소용인가.

이건혁 경제부 기자 g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