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축구 청소년 세계선수권 코치-선수가 경험한 ‘남북 단일팀’
1991년 세계청소년축구대회에 남북 단일팀 선수로 참가했던 서동원 고려대 감독(45)은 북한 선수들과 함께한 여정을 이렇게 회고했다. 1991년 6월 포르투갈에서 열린 세계청소년축구대회에서 남북 단일팀은 8강에 오르는 쾌거를 이루었다.
2018 평창 겨울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의 남북 단일팀 구성이 추진되고 있다. 세계청소년축구대회 멤버들은 단일팀이 성공하려면 양국 선수 간의 이질감을 줄이고, 전력 약화를 막기 위해 운영의 묘를 살려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과 평양에서 열린 합동훈련 당시 남북 선수들의 숙소는 철저히 분리돼 있었다. 서 감독은 “선수들끼리 떨어져서 생활하니 친해지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포르투갈에서 대회를 치르면서 조금 여유가 생겨 북한 숙소에 드나들기도 하면서 친해졌다”고 말했다. 그는 “양국 선수 간의 이질감을 해소하기 위해 지나친 감시보다는 서로 편하게 얘기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단일팀 8강 쾌거는 남북의 특징을 살렸기에 가능했다. 코치로 참가했던 최만희 부산 아이파크(K리그 챌린지) 대표이사(62)는 “북한은 공격진이 강했고, 우리는 수비진이 뛰어났다. 이 때문에 선발 멤버를 구성할 때 공격은 북한, 수비는 한국 선수들 위주로 구성했다”고 말했다.
서 감독은 조별리그 첫 경기인 아르헨티나전 승리가 남북 선수를 더욱 똘똘 뭉치게 만드는 계기가 됐다고 했다. 당시 아르헨티나는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현 토트넘 감독 등 스타 선수를 대거 보유한 강호였다. 서 감독은 “아르헨티나가 경기 전 워밍업에도 나오지 않았다. 투쟁심 강한 북한 선수들이 ‘아르헨티나가 우리를 무시하고 있다. 나가서 혼내주자’고 말했다. 이에 다 같이 전의를 불태운 끝에 1-0으로 이길 수 있었다”고 말했다.
대회를 끝낸 남북 선수들은 평양에서 해단식을 가진 뒤 판문점에서 헤어졌다. 서 감독은 “다시는 만나지 못한다는 생각에 많이 울었다. 자라온 환경, 정치적 이념은 달랐지만 같은 민족이 축구를 통해 뭉친다는 사명감과 책임감이 컸던 대회였다”고 말했다.
당시 남북 복식에 참여했던 유남규 삼성생명 감독은 “당시 처음 단일팀이 꾸려졌기에 통일을 향한 국민적 염원과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 속에서 선수들 사이에 별다른 마찰 없이 대회를 치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정윤철 trigger@donga.com·김재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