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과후 영어수업 금지’ 둘러싼 갈등
초등학교 1, 2학년 방과후 영어수업에서 원어민이 영어회화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올해 신학기부터는 학교 내에서 이 같은 1, 2학년 대상 방과 후 영어수업이 전면 금지된다. 동아일보DB
왜 교육부는 공교육의 영어만 못 잡아 안달일까. 학부모들이 분노하는 핵심이다. 엄마들은 다 아는 사실을 정말 교육부가 모르는 걸까. 진짜 문제인 학원 영어는 못 잡는 걸까, 안 잡는 걸까. 엄마들은 그 속내가 궁금하다.
○ 학부모-교육부 끝없는 갈등
하지만 상당수 학부모가 이 전제에 동의하지 않다 보니 영어교육 금지를 둘러싼 갈등의 폭은 좁혀지지 않고 있다. 설령 동의했다 하더라도 많은 학부모가 “진짜 문제인 사교육부터 잡아라. 그래야 교육격차가 안 생기지 않겠느냐”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물론 교육부도 할 수만 있다면 둘 다 잡았을 것이다. 하지만 공교육은 정책 몇 개로 쉽게 영어교육을 금지시킬 수 있는 반면 사적 영역인 영어학원은 제재가 매우 어렵다. 교육철학을 구현하기 위해 교육부는 제재가 쉬운 공교육 영어라도 금지시키자는 생각이었지만 초등학교에 이어 유치원 영어교육까지 잇달아 금지하자 학부모들의 ‘분노의 뇌관’이 터진 것이다.
유치원 영어교육 문제를 1년 뒤에 결정하겠다고 밝힌 교육부는 “국민 의견을 고려해 사교육부터 잡겠다”며 내달부터 일명 ‘영어 유치원(영유)’이라 불리는 유아 대상 영어학원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유아 영어학원 규제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영유’에 대한 문제 제기가 이미 수년 전부터 계속됐음에도 교육부가 사실상 손을 놓고 있었던 것도 이것이 건드리기 싫을 만큼 몹시 골치 아픈 문제이기 때문이다.
교육부는 과거 딱 한 번 2014년에 영유 규제를 시도한 적이 있다. 당시 교육부의 지상과제는 사교육비 경감이었다. 영유의 고액 수업료를 규제하기 위해 사교육 종합대책에 영유의 원어민 강사 채용 금지 내용을 포함시켰다.
정책이 나온 배경은 이렇다. 당시 교육부가 영유 수업료를 따져 보니 비용 대부분은 원어민 강사 인건비가 차지했다. 교육부는 원어민 채용을 제재하기 위해 강사로 일할 때 필요한 ‘E2 비자’ 발급 제한 정책을 발표했다.
당장 학원계와 학부모들이 들고일어났다. 외국어 학원들이 속한 전국외국어교육협의회는 “소송도 불사하겠다”고 맞섰고 일부 학부모는 “헌법이 보장한 교육 기본권을 제한하는 것”이라며 위헌 소송을 내겠다고 반발했다. 외국인 비자 발급을 제한하자는 발상은 외교 문제로까지 비화될 조짐을 보였다. 결국 해당 정책은 폐기됐다.
교육부는 이번만큼은 영유 단속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운영시간 제한’ 카드가 가장 유력하다. 교육부 관계자는 “사회적 논의를 통해 유아 대상 영어교육 시간의 상한선을 정하는 게 필요하다고 본다”며 “종일제 영유를 없애고 반일제만 허용하는 식의 접근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교육부가 유치원 영어교육 금지에서 한발 물러서면서 학부모들은 3월부터 시행되는 초등 1, 2학년 방과후 영어수업 금지 폐기도 주장하고 있다.
초2 자녀를 둔 학부모 강현주 씨(38)는 “방과후 영어수업 같은 놀이식 영어학원을 찾고 싶어도 학원은 놀이식으로 운영되는 곳이 없다”며 “학원은 학부모 기대치를 만족시켜야 살아남을 수 있어 공부식 수업이 강도 높게 이뤄지고 자주 레벨 테스트를 봐 아이들을 더 큰 경쟁으로 내몬다”고 지적했다.
초등 방과후 영어수업 금지 폐기를 요청하는 학부모 요구가 계속되자 교육부는 이 같은 여론이 정치권 압박으로 이어질지 주시하고 있다. 교육부는 “초등 방과후 영어수업 금지는 이미 정책적 판단이 끝난 사안”이라며 “일선 교육청에 공문이 다 내려가 학교들도 방과후 수업을 정리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임우선 기자 ims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