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의 최전선]치매 <3> 치료제 개발 긴 싸움 시작됐다
랭커스터대
박 책임연구원의 말대로 치매 연구의 가장 큰 어려움 중 하나는 시간과의 싸움이다. 긴 시간에 걸쳐 진행되는 노년의 질환이다 보니 원인을 밝히거나 치료제로 동물실험 또는 임상시험을 할 때 다른 질병에 비해 오래 걸릴 때가 많다. 긴 안목으로 계획을 해야 한다.
○ 암보다 유독 더딘 치매 치료제 개발
김기웅 중앙치매센터장(분당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은 “워낙 복잡한 질병이다 보니 막대한 투자에도 실패가 많다”며 “신약을 개발하는 기업 입장에서 연구개발(R&D)을 계속해야 하는지 고민이 많은 상황”이라고 했다. 그나마 그동안 승인받은 약 가운데 진정한 의미의 치매 치료제는 아직 없다. 뇌의 인지 기능을 보완해 눈에 보이는 증상만 조금 완화시켜 주는 역할을 할 뿐이다.
치매 연구자들은 단순히 증상을 보완하는 약보다 치매의 진행을 늦추거나 기억력 등 인지 기능을 근본적으로 회복시키는 차세대 치매 치료제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이 분야는 비관과 낙관이 공존한다. 제프리 커밍스 미국 로루보 뇌건강치료센터장은 매년 전 세계 치매 임상시험 현황을 체계적으로 분석해 치매 분야 국제 학술지 ‘치매 및 알츠하이머’에 논문을 발표한다. 가장 최근인 작년 9월 논문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임상시험 중인 치매 치료제는 2017년 초 기준으로 105개다. 이 중 마지막 시험 단계인 임상 3상에 와 있는 후보 약은 28개다. 암 등 다른 주요 질환에 비하면 무척 적다. 암의 경우, 면역 치료제라는 분야의 임상 단계 약만 해도 2017년 9월 기준으로 940개에 이른다. 커밍스 교수는 “2017년 새롭게 임상 1상에 진입한 치매 치료제 후보는 8개에 불과하다”며 “알츠하이머 병 치료제 개발이 절망적으로 느리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고 했다.
하지만 연구자들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묵인희 서울대 의대 교수는 “비관적으로 보는 사람도 있지만 3상에 있는 후보 가운데 임상을 통과하는 새로운 약이 반드시 나올 것으로 보는 사람도 많다”며 “5∼10년 내에 치료제 분야에 새로운 사례가 등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 책임연구원은 “과거에는 치매 치료제라고 하면 심각하게 진행된 중증 치매를 떠올리고 이를 다시 정상으로 되돌리는 데 집중해 개발이 더 어려웠는데, 요즘은 가벼운 수준의 인지장애(MCI)나 초기 치매 때 병의 진행을 늦추는 데 더 관심이 많다”며 “지금 임상시험 중인 약 가운데 일부도 충분히 성공 가능성이 있다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 아밀로이드 제거 등 임상시험 성과
또 다른 방식은 뇌 안에 아밀로이드 베타가 아예 생기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아밀로이드 베타는 체내에서 몇 개의 효소가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의 ‘재료’ 물질을 잘라 만든다. 이 과정에서 효소가 단백질을 정상 길이보다 약간씩 길게 자르면 마치 머리카락이 뭉치듯 아밀로이드 베타가 자신들끼리 엉기면서 뇌 속 노폐물이 된다. 이 문제를 일으키는 효소를 억제하면 노폐물 생성을 근본적으로 막을 수 있는 셈이다. 이 방식으로 치매 치료제를 만드는 대표 주자인 글로벌 제약사 머크는 유력 후보였던 MK8931의 임상 3상 실패를 2017년 초에 선언했다. 하지만 노바티스, 릴리, 얀센 등이 아직 임상 2, 3상 시험을 계속하고 있다.
○ ‘타우 단백질’ 노리는 약 급부상
‘주류’인 아밀로이드 베타 대신 또 다른 뇌 속 노폐물 단백질인 타우 단백질을 노리는 약도 최근 급부상하고 있다. 타우 단백질은 뇌세포 안에 존재하는 단백질로 정상일 땐 신경세포의 구조를 이루지만 치매가 진행되면 자기들끼리 엉켜 덩어리가 돼 신경세포를 죽인다. 뇌세포 안에 위치해 약으로 치료하기가 한층 어렵다.
학회에서는 아밀로이드 베타 연구파와 타우 연구파가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한국도 5년여 전부터 연구가 크게 늘었다. 전 세계적으로 임상 3상에 이른 약은 아직 많지 않아 2017년 기준으론 하나뿐이지만 후보가 점점 늘고 있다.
치매는 근본 원인, 조기 진단, 치료제 개발 등 무엇 하나 쉬운 게 없는 난제다. 뇌가 인류 최후의 블랙박스이듯, 치매 역시 의학계의 마지막 블랙박스 중 하나일 가능성이 크다. 치료제는 이런 침묵을 깨기 위해 다른 어떤 분야보다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크든 작든 성공 사례가 나와야 치매 정복이라는 긴 여정을 지속할 수 있을 것이다.
윤신영 동아사이언스 기자 ashill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