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 커버스토리]방산 강소국으로 가는 길
핀란드에 수출된 K-9 자주포.
한화지상방산 K-9 자주포 생산 공장에서 10여 분 거리의 한화디펜스는 기동 장갑차와 대공포, 항법장치 등을 전문으로 생산하는 업체. 기존 비호(飛虎) 자주대공포에 첨단 유도탄으로 LIG넥스원이 생산한 신궁(新弓)을 장착한 개량형인 ‘비호복합’(30mm 복합대공화기)을 수출 주력품으로 삼을 계획이다.
공장에서는 10년 20년 30년 사용되던 중고품을 완전히 분해한 뒤 새로 정비, 조립하는 것은 물론이고 좌우 각각 2발씩 4발의 신궁 유도탄을 장착하는 작업도 진행되고 있었다. 비호의 30mm 대공포 유효 사거리가 3km가량인 데 반해 신궁은 사거리가 6∼7km로 길다. 무엇보다 20km 밖에서부터 표적을 추적했다가 신궁으로 타격하는 능력을 갖췄다고 송병근 생산팀장은 설명했다.
지난해엔 사우디아라비아와 인도를 상대로 ‘비호복합’ 제품 설명회도 가졌다. 사우디에는 고온과 사막 먼지에 강하게 하는 등 맞춤형 제품을 만들어 시장을 공략할 것이라고 한다. 비호복합 생산라인 옆에는 지난해 벨기에 포탑 전문업체인 CMI로부터 포탑 240개를 수주해 ‘100호’째 제품이 생산되고 있었다. CMI가 더 선진 업체지만 성능이 뒤지지 않으면서 가격이 낮아 수주할 수 있었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지난해 방산 비리 수사 등으로 타격을 받았음에도 방산 수출이 30억 달러를 회복한 데는 노르웨이에 K-9 자주포 24문과 K-10 탄약운반 장갑차 6대, 핀란드에 K-9 자주포 48문을 판매하는 등 선진국 시장을 파고든 것이 주효했다는 분석이다. 한화지상방산이 2000년 터키와 2014년 폴란드에 수출한 바 있지만 차체 등 일부만 판매됐고 완전체가 유럽에 수출된 것은 지난해가 처음이다. K-10 탄약운반장갑차가 수출된 것도 처음이었다.
지난해 전체 무기 수출에서 중동(약 12억 달러·약 1조2846억 원)과 아시아(약 11억 달러·약 1조1776억 원)가 차지하는 비중이 72.2%로 여전히 크지만 서서히 선진국 시장을 공략하고 있는 것이다. 31억9000만 달러 수출은 방사청 개청 당시인 2006년 2억5000만 달러에 비해 13배가량 증가한 것이다.
○ “기술이전에 호의적인 국가의 제품 쓰겠다”
해외 바이어들이 한국 방산업계를 설명할 때 한국의 자동차산업과 자주 비교한다고 한다. 방산 역사가 짧고 기술력도 선진국과 차이가 있지만 비용 대비 성능으로 소비자 만족도가 높다는 것이다.
양욱 한국국방안보포럼 WMD대응센터장은 “가장 단순하고, 값싼 방산 제품인 탄약을 수출하던 과거의 이미지에서는 이제 완전히 벗어났다”며 “미국과 프랑스 같은 방산 선진국 제품보다 저렴한 비용으로 좋은 성능을 갖춘 무기를 만들고 있다는 인식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고 말했다.
많은 전문가들은 한국 무기가 가진 핵심 경쟁력으로 장기적인 파트너십도 꼽는다. 선진국이 기술 이전에 인색한 반면에 한국은 후발 주자란 약점을 만회하기 위해 기술 이전과 인력 교육 같은 장기적 협력에 적극적이다.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카타르 같이 ‘오일달러’를 보유한 중동 산유국이나 아시아 개도국들이 장기적이고, 자체적인 국방 역량을 키우기 시작하면서 한국 선호 현상은 더욱 뚜렷해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양 센터장은 “자국 국방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선진국 방산 기업보다 덜 유명하더라도 기술 이전에 호의적인 국가의 제품을 쓰겠다는 분위기가 개도국들 사이에서 확산되고 있다”며 “한국에는 확실한 기회”라고 말했다.
한국 방위산업 경쟁력이 높아지고 수출의 밑거름이 된 데는 ‘다변화 고부가가치 전략’도 꼽힌다. 1990년대 후반까지 전체 방산 수출액의 80% 이상을 차지하던 탄약과 총포 부품은 2012년 18%까지 줄었다. 그 대신 자주포와 항공기, 함정 등 고성능 무기의 해외 수출이 크게 늘어났다. 2011년 T-50 인도네시아 수출 계약으로 한국은 세계에서 여섯 번째 초음속 고등훈련기 수출국이 된 것이 대표적이다. 특히 T-50을 경(輕)공격기로 개량한 FA-50은 지난해까지 64대 수출됐다. 23억3000만 달러(약 2조5600억 원)어치로 국산 무기 누적 기준 최대 수출액이다.
○ 북한 이상을 봐야 무기 수출 경쟁력 커진다
성장 가능성은 충분하지만 한국 무기의 수출 경쟁력을 한 단계 높이기 위한 개선점도 적지 않다. 대표적인 것이 ‘좁은 범용성’이다. 즉, 근거리의 북한을 대상으로 개발돼 한국산 무기의 상당수가 북한군의 특성과 한반도 지형에 너무 특화돼 있다는 것. 김대영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연구위원은 “한국의 방산은 지금까지 ‘수출 마인드’가 부족했다”며 “이제는 처음부터 대규모 수출까지 고려한 무기 개발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방산 강소국 스웨덴의 업체 사브가 개발한 전투기 ‘그리펜’은 처음부터 개도국 수출을 감안해 개발됐다는 평가가 많다. 무장 방식과 엔진 구성 등이 스웨덴만의 특성보다는 국제적 표준을 훨씬 더 적극 반영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사브는 2016년 10월 브라질과 54억 달러 규모의 그리펜 수출 계약을 체결하는 성과를 올렸다.
개도국을 주력 시장으로 삼고 있는 게 향후 한국 방산의 발전에 큰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도 많다. 시장의 성장 가능성은 큰 장점이지만, 계약 체결 과정과 조건이 불투명하다는 것. 각종 이면 계약과 로비가 판칠 수 있고, 수출 대상국의 정권이 바뀌면 계약 변경 요구 같은 움직임도 발생할 수 있다. 김 연구위원은 “자칫 잘못하면 이른바 ‘방산 비리’가 터질 수 있는 요소가 개도국 무기 수출에는 존재한다”며 “이런 점을 어떻게 제도적으로 보완할지에 대해 정부와 방산기업 모두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