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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뷰스]포항지진, 과학적 검증거쳐 발표해야

입력 | 2018-01-22 03:00:00


김복철 대한자원환경지질학회장

지난해 11월 포항에서 일어난 규모 5.4의 지진은 우리나라가 더 이상 지진으로부터 안전하지 않다는 사실을 각인시켜 줬다. 막대한 피해를 입은 포항 시민들은 지진에 대한 두려움과 심각한 트라우마에 밤잠을 설치고 있다. 그 과정에서 포항에서 진행 중이던 지열발전 연구개발사업이 지진을 유발했다는 가설이 언론을 통해 언급되고 퍼져나가면서 포항 시민들은 더 큰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다.

지질과학자의 한 사람으로서 이번 논쟁을 바라보며 안타까운 마음을 감출 수 없다. 과학자에 의해 시작된 가설이 과학적 검증 과정을 거치지 않고 시민들에게 직접 전달됐기 때문이다. 검증되지 않은 가설이 사실인 것처럼 퍼져나가게 된다면 과학자는 과학자로서의 권위는 물론이고 사회적 역할 또한 상실하게 된다. 이는 과학에 의한 의사결정이 과학의 영역이 아닌 정치의 영역에서 이루어지게 된다는 뜻이다. 이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과학자 가운데에서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과학자는 자신의 가설이나 이론을 검증하는 절차로 논문 발표를 택한다. 관련된 분야의 전 세계 전문가로 구성된 논문 심사위원들에게 검증을 받는 것이다. 이 과정은 짧게는 수개월에서 길게는 2∼3년이 걸려, 과학자들에게는 매우 혹독한 과정이다. 그러나 이 과정을 거치며 가설은 더욱 정교해지고 그 가설이 과학적으로 인정받는 효과적인 수단이 된다.

이러한 일반적인 과정을 거치지 않고, 과학자라는 권위만으로 검증되지 않은 가설을 발표하게 되면 지금과 같이 비과학적 영역에서 소모적인 논쟁이 발생하게 되고, 진실을 규명하기는 점점 어려워지게 된다.

정부는 포항 지진의 원인을 정확하게 규명하기 위해 지열발전 연구개발사업을 중지하고 조사단을 구성하고 있다. 그러나 이미 많은 시민들이 지열발전이 포항 지진의 원인이라고 믿고 있는 상황에서 조사단의 조사 결과를 시민사회가 그대로 수용할 것인지에 대해 많은 과학자들이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포항에서는 과학자에 대한 불신마저 생겨나고 있으며, 이러한 불신은 합리적 의사결정을 가로막게 된다. 모두를 위해 불행한 일이다.

최근 포항에서는 이산화탄소 지중저장과 관련된 연구개발사업도 지진 유발 가능성이 있다는 검증되지 않은 가설 제기 때문에, 연구 중지 및 시설 폐쇄를 요구하는 의견도 표출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산화탄소 지중저장 연구개발의 주입 규모, 주입 속도, 안전성 분석과 관련한 과학적 연구 결과는 검증되지 않은 가설에 묻혀버린 상황이다. 과학적으로 이산화탄소 지중저장이 광산개발, 지하수개발, 건설, 석유가스개발, 폐수 지중처리 등과 비교할 때 위험성이 가장 적으며, 연구 규모의 이산화탄소 지중저장은 지진을 유발하기 어렵다는 것이 과학계에서의 일반적인 상식이다. 상식은 무분별한 가설과 비과학적 소문이 만든 풍랑에 좌초되고 있다.

과학은 과학의 영역에서 논쟁이 이뤄질 때 그 결과를 신뢰받을 수 있다. 특히 시민들의 관심이 집중된 사안에 대해서는 과학적인 검증 절차를 거쳐 발표돼야 하며, 정제된 내용으로 정부와 시민들에게 전달돼야 한다. 이번 포항 지진을 통해 우리 과학계가 과학자의 자세에 대해 다시 한번 성찰해 보면서, 한 단계 성숙하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한다. 마지막으로 과학자이기 이전에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지진으로 몸과 마음에 상흔이 남은 포항 시민에게 위로와 응원을 보낸다.

김복철 대한자원환경지질학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