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할머니, 용서가 뭐야? 없던 일로 하자는 거야? 아님, 잊어달라는 거야? 찬성이 채근하자 할머니는 강마른 손가락으로 담뱃재를 바닥에 톡톡 털며 무성의하게 대꾸했다. 그냥 한번 봐달라는 거야.―바깥은 여름(김애란·문학동네·2017년) 》
열 살 노찬성의 아버지는 보험금을 노리고 고의로 사고를 냈다. 들통이 나는 바람에 돈은 한 푼도 남기지 못했다. 유일한 가족인 할머니는 집 근처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분식을 팔며 두 사람의 생계를 꾸역꾸역 해결했다. 어느 날 노찬성은 주인에게 버려져 휴게소 한편에 묶여 있던 흰 개를 데려와 ‘에반’이라는 이름을 지어준다. 천덕꾸러기처럼 남겨진 둘은 영원히 서로의 곁에 머무르며 외로움을 채워줄 것 같았다.
그러나 에반은 이미 나이가 많았고 고치기 어려운 병에 걸려 있었다. 노찬성은 개의 안락사를 위해 전단지 아르바이트를 하며 11만4000원을 모았다. 하지만 돈이 생기자 노찬성은 휴대전화를 개통하고 핫바를 사 먹었다. 에반의 고통과 맞바꾼 돈을 다시 채우려면 사흘이 걸릴 텐데, 에반이 그 정도는 기다려주지 않을까. 어쩌면 에반이 다시 건강해지지 않을까, 말도 안 되는 자기합리화도 해 본다. 개는 고통을 참지 못하고 구슬피 울기 시작하다가 고속도로에 뛰어들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그제야 노찬성은 할머니가 알려준 ‘용서’라는 말을 떠올린다. 그러나 차마 입 밖에 내지 못한다.
어린 노찬성이 깨달은 것처럼 ‘용서’라는 말은 ‘없던 일이 될 수도 없고, 잊을 수도 없는 일’을 저지른 사람이 먼저 꺼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요즘은 이 말이 참 가볍게 쓰인다. 여덟 살 아이를 잔인하게 성폭행한 조두순, 중학생 딸의 친구를 살해한 이영학과 그 외에 수많은 자격 없는 사람들이 ‘내가 이만큼 노력하고 있으니 한 번 봐 달라’며 너무 쉽게 용서를 구한다.
손가인 기자 ga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