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1998년, 2008년의 메르켈 총리. 최근 지지율 하락에 그의 주름이 늘고있다. 사진 출처 가디언
구자룡 이슈&피플팀 기자·前 베이징 특파원
2005년 SPD 소속 게하르트 슈뢰더 전 총리(1998∼2005년)에게 승리한 뒤 집권한 메르켈 총리는 그동안 그리스 부채위기,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등 유럽 분열의 원심력이 커지는 속에서 유럽 통합의 핵심적인 지도력을 발휘해 왔다.
특히 지난해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미국 우선주의’와 고립주의 보호무역주의에 맞서왔다. 그의 리더십 향배는 독일 국내 정세와 유럽 통합, 나아가 세계 자유무역 체제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그만큼 메르켈의 위상이 높아진 것을 방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메르켈의 연정 협상에 주목하는 이유다.
기민-기사 연합과 SPD가 마지막 24시간에는 밤샘 협상을 벌인 끝에 12일 예비협상에 합의했다. SPD가 21일 특별 전당대회에서 예비협상안을 통과시키면 22일부터 본협상을 벌인다. 연정계약서 초안이 나와도 SPD 당원투표가 남아있다. 작센안할트와 튀링겐주(州) SPD는 합의안에 반대 입장을 공식화해 내부 반발이 크다. 양당 간 협상이 타결돼도 신정부는 빨라야 4월에야 가동될 것으로 보인다.
메르켈은 국내 여론조사에서 다음 총선 2021년 전에 총리직에서 물러나야 한다는 응답이 지난해 10월 36%에서 12월에 47%로 올랐다. 심지어 디벨트지의 최근 조사에서는 ‘당장 퇴임’ 응답도 50%를 넘었다.
‘독일의 대처’로도 불리던 메르켈의 리더십이 급격히 흔들리는 이유는 뭘까. ‘끝까지 여론을 들어 결정한다’는 실용주의와 신중함은 결단이 필요한 때에 ‘참을 수 없는 우유부단’으로 인식되고 있다. 야당의 정책을 과감히 수용해 ‘학습 기계’라는 별명도 붙은 ‘무터(엄마) 리더십’ 포용의 정치는 반대파의 정체성을 파괴하고 존재 가치를 떨어뜨린다는 지적으로도 해석된다. 식상함과 ‘메르켈 피로증후군’이 쌓여간다는 경보음이 커지고 있다.
무엇보다 중동과 아프리카에서 몰려드는 난민에 대한 포용 유화정책이 불안감을 높여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지난해 9월 외국인 혐오 민족주의 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 12.6%를 득표하며 3당으로 올라선 것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총선 이후 일부에서는 메르켈이 ‘헬무트 콜의 최장 집권 기록을 갱신할까’ 하는 관측도 나왔으나 벌써 오랜 옛날 얘기처럼 됐다.
독일의 진보와 보수 정권은 시기별로 시대적 사명을 역할 분담했다. 아데나워, 루트비히 에르하르트, 쿠르트 게오르크 키징거 등 3명의 보수 CDU 총리 정부가 3연임(1949∼1969년)하며 전후의 혼란을 극복하고 재건의 기틀을 닦았다. 안보와 경제적 안정의 토대 위에서 SPD 소속 빌리 브란트와 헬무트 슈미트 총리가 연이어 집권(1969∼1982년)해 ‘동방 정책’ 등 동독 포용정책으로 화합과 통일을 준비했다. 지난해 6월 작고한 CDU 소속의 헬무트 콜이 서독 총리 8년과 통독 총리 8년 등 16년을 재임(1982∼1998년)하면서 탈냉전 시대 속에서 통일을 마무리했다.
메르켈이 4연임을 무사히 마치면서 난민 유입 사태 수습과 유럽 통합의 사명을 다할지 또 다른 시대가 시작되면서 중도 하차해 무대 뒤로 사라질지 지켜볼 일이다.
구자룡 이슈&피플팀 기자·전 베이징 특파원 bonh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