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B급 며느리’ 한 장면. 에스와이코마드·글뫼 제공
장선희 문화부 기자
카메라를 쳐다보며 당당히 시어머니와의 ‘한바탕’을 털어놓는 아내. 이어지는 남편의 힘없는 독백에 관객은 웃음이 터진다. “나는 이상한 여자와 결혼했다.”
17일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B급 며느리’ 얘기다. 영화는 감독이 겪었던 고부(姑婦) 갈등이 소재다. 그의 어머니와 아내, 유치원생 아들이 주·조연을 맡았다. 고부는 집에서 고양이를 키우네 마네, 아이 옷을 어떤 걸 입히네 마네 ‘사소한’ 것들로 신경전을 벌인다. 참다못한 며느리는 명절과 제사 불참 선언은 물론이고 시댁에 발길을 아예 끊어버린다. “며느리의 첫 번째 임무는 집안의 왕인 시아버지 생신 등 대소사 참석!”이란 가치관에 익숙한 시어머니에게 맞서 며느리는 읊조린다. “이런 거, 내가 다 바꿀 거야.”
소셜미디어에서 큰 인기를 끈 고부갈등 소재 웹툰 ‘며느라기’(며느라기 페이스북 캡처)
예컨대 이런 식이다. 임신 중인 큰며느리가 시댁 제사에 안 온다. 둘째 며느리 혼자 낑낑대며 모든 일을 다 한다. 집에 와 허리를 두드리는데, 늦게 걸려온 형님의 전화. “내가 미안할 일은 아닌 거 같은데?” 이 장면에서 적잖은 며느리들이 ‘멘붕’을 겪었다. 나 역시 읽으면서 ‘당연히 형님이 미안해해야지!’ 했다가 생각을 거뒀다.
그랬다. 정작 미안해야 할 건, 온갖 일을 오롯이 며느리들 몫으로 돌려버린 다른 가족들이다. ‘며느라기’는 당사자임에도 남편과 시아버지, 아주버니 등 그동안 언급되지 않았던 남성들을 끌어들여 문제를 바라보게 한다.
요즘은 여기저기서 익숙하다고 그냥 지나쳤던 것들에 반기를 드는 세상이다. 할리우드에서 화제인 ‘타임스 업’ 운동도 마찬가지다. 으레 참거나 없던 일처럼 눈감고 대충 넘기던 ‘관습’에 반기를 드는 거다. 한 포털 사이트 카페에선 ‘이런 것까지 짚고 넘어가면 내가 쪼잔한 사람 되는 거죠?’란 여성들 글이 넘친다. 직장의 남녀차별, 출산휴가를 쓴다고 했더니 사직을 권하는 상사 등등…. 참을 일이 아니다. 말 안 하면 모른다. 정말 말해야 할 때(‘Time′s up’)가 됐다.
“이게 나와 시어머니의 일 같지? 사실은 그 집에서 손발 멀쩡히 움직이는 사람이 넷이나 되는데, 나랑 어머니 둘이서 ‘네가 했네, 내가 했네’ 싸우고 있다는 게 정말 이상한 일이거든.”
장선희 문화부 기자 sun1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