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동아일보]<17> 박인구 동원그룹 부회장
1964년 이후 신동아 대부분 보유 박인구 동원그룹 부회장이 2002년 한국과 스페인의 월드컵 8강전을 앞두고 배포된 동아일보 호외를 들고 있다(위쪽 사진). 당시 호외에는 ‘히딩크, 당신은 영웅입니다’라는 제목으로 박 부회장의 특별기고가 실렸다. 박 부회장은 고등학생 때부터 신동아를 모으기 시작해 이사 다니며 잃어버린 몇 권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신동아를 보유하고 있다(아래쪽 사진).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호외 1면에 실린 기고문의 제목은 ‘히딩크, 당신은 영웅입니다’였다. 거스 히딩크 감독과 생년월일(1946년 11월 8일)이 같은 데다 특별한 일정이 없는 한 매일 아침을 축구로 시작하는 나는 8강전 진출 소식에 흥분을 가라앉힐 수 없었다. 밤새워 격정적으로 글을 썼다. 히딩크 감독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의 글에서 학연, 인맥에 구애받지 않고 오로지 실력으로 인재를 뽑아 한국 축구를 한 단계 선진화시킨 그의 경영자로서의 안목을 칭찬했다. 축구는 이기기도 하고 지기도 하는 경기일 뿐이지만 그걸 통해 가능성과 자신감을 확인한 우리가 이제부터 새 길을 여는 일만이 남았다고도 썼다.
글에 담긴 벅찬 심정을 누구하고라도 공유하고 싶었다. 그때 떠오른 것이 동아일보였다. 당시 나는 어린이에게 최고의 운동이 축구라며 ‘동원컵 전국 유소년 축구리그’를 만들어 후원하고 있었다. 어느 언론보다 동아일보는 이런 진심을 알아줬고, 꼼꼼히 유소년 축구리그의 발자취를 담아줬다. 조심스럽게 의뢰했고, 동아일보는 ‘글이 좋다’며 호외판에 실었다.
고시를 통과해 정부 관료로서 일하기도 했고, 동원그룹에 몸담은 지도 20년 남짓 됐지만 한때 나는 고등학교 교사였다. 정치경제를 맡았던 나는 제자들에게 늘 동아일보의 사설 읽기를 숙제로 내줬다. 동아일보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틔웠던 경험을 앞으로 한국을 이끌어 나갈 학생들과 공유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또 사설을 읽으면 한문과 함께 논리적 사고를 배울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당시 제자들은 지금도 나를 만나면 “선생님이 내준 사설 읽기 숙제가 큰 자산으로 남았다”는 이야기를 한다.
사실 내 젊은 시절도 동아일보와 떼어놓을 수 없다. 조선대 부속고교를 다닐 때 교지 기자로 활동했고 장래에 기자가 되겠다는 꿈이 자연스럽게 생겼다. 글을 잘 쓰려면 신문뿐만 아니라 잡지도 읽어야 할 것 같았다. 마침 1964년 신동아가 복간됐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신동아를 구독하고 있다. 해외에 10년간 파견 나가기도 하고, 몇 번의 이사를 해 일부 유실되기도 했지만 신동아는 1964년 복간호부터 지금까지 대부분의 호를 갖고 있다.
이 때문에 겪은 고초도 있다. 맹호부대 파월 장병으로 군복무를 할 때 박정희 전 대통령이 3선 개헌을 시도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베트남에서 군 생활을 하는 동안 꾸준히 신동아를 읽었는데 당시 신동아에는 3선 개헌에 비판적인 기사가 많았다. 나는 친구에게 박 전 대통령의 3선 개헌에 반대한다는 내용을 담은 편지를 썼다. 편지는 보안사에 걸렸고, 본국으로 바로 송환 조치됐다.
나는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글 쓰는 걸 좋아한다. 최고경영자(CEO) 가운데 신년사나 조회사를 쓸 때 부하 직원이 써온 글을 어느 정도 수정하는 분도 있는 것으로 안다. 지금껏 나는 한 번도 남에게 글을 맡긴 적이 없다. 그 양분이 어디서 왔을까 떠올리면 단연코 어릴 때부터 읽었던 동아일보라 확신한다.
2018년 1월 26일이면 동아일보가 지령 3만 호를 맞는다. 지령 3만 호에는 나의 역사가, 대한민국의 역사가, 세계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2020년이면 동아일보가 창간 100주년을 맞는다. 과거 어린 청춘들이 동아일보를 통해 바른 정신을 몸과 마음에 새겼듯이 앞으로도 동아일보가 청춘들의 이정표가 되길 간절히 바라본다.
박인구 동원그룹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