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산수유
산수유 열매는 단풍과 함께 늦가을을 붉게 물들인다.
경문왕은 왕위에 오르자 귀가 갑자기 당나귀 귀처럼 길어졌다. 왕비를 비롯한 궁궐 사람들은 이 같은 사실을 몰랐지만 오직 모자를 만드는 장인만 알고 있었다. 그러나 장인은 평생 이 사실을 남에게 말하지 못하다가 죽을 즈음 도림사 대나무 숲에서 대나무를 향해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쳤다. 그 뒤에 바람이 불 때마다 대나무 숲에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소리가 났다. 왕은 그 소리가 듣기 싫어 대나무를 모두 베고 대신 그 자리에 산수유를 심었다. 그랬더니 그 뒤에는 다만 ‘임금님 귀는 길다’는 소리만 났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설화에 대나무와 함께 등장하는 산수유는 신라시대 자연생태만이 아니라 정치 문제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산수유처럼 사료에 등장하는 한 그루의 나무는 곧 인문생태의 가치도 지니고 있다. 우리나라 전통 마을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산수유도 양반의 정신세계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나는 산수유 꽃이 필 때마다 꽃송이를 센다. 산수유 꽃은 멀리서 볼 때와 가까이에서 볼 때의 모습이 사뭇 다르다. 꽃송이는 별처럼 영롱하게 빛난다. 사람도 누구나 가슴에 자신만의 별을 갖고 있다. 인생은 곧 자신만의 별을 빛나게 하는 과정이다. 별은 어둠에서 빛나서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어둠을 밝히기 때문에 위대한 것이다.
강판권 계명대 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