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올해 위령사업 본격 추진 일제 “부랑아 갱생” 명목 학원 설립 아동-청소년 감금해 강제노역 동원… 1982년까지 최소 1만여명 피해 2016년 조례 만들며 진상규명 나서
지난해 1월 선감도 경기창작센터에서 약 200m 떨어진 곳에 문을 연 선감역사박물관. 컨테이너 3개를 활용해 조형미를 갖춘 공간에 유물과 사진, 영상물 등을 전시한다. 경기창작센터 제공
하지만 서해바다가 내려다보이는 평화롭기만 한 이곳이 참혹한 역사의 현장이라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40년간 어린이와 청소년을 납치 감금해 폭행과 학대, 고문, 착취가 이뤄진 선감학원이 여기에 있었다. 시화호 개발로 육지가 된 선감도에는 당시 선감학원 기숙사와 축사 식당 흔적이 남아 있다. 경기도의회가 진상조사를 벌여 인권 유린 실태를 확인한 데 이어 올해는 경기도 차원의 유해 발굴과 위령사업을 추진한다.
○ ‘죽음의 섬’
1970년경으로 추정되는 때에 선감학원 원생들이 강당 같은 곳에 모여 경례 하고 있다. 뒤쪽의 부녀자들은 부모인지, 마을 주민인지는 확실치 않다. 경기도 제공
그러나 갱생과 교육은 허울뿐이었다. 원생들은 폭력과 굶주림 속에서 강제노역에 동원됐다. 66만 m²(약 20만 평)의 농지를 개간하고 경작하고 축사에서 중노동에 시달려야 했다. 성폭행도 빈번했다. 구타와 영양실조로 숨지거나 견디지 못해 바다를 헤엄쳐 탈출하다가 주검으로 발견되기도 했다.
1945년 광복을 맞았지만 사정은 변하지 않았다. 경기도 소속으로 이관된 선감학원에서는 1982년 문을 닫을 때까지 인권 유린이 계속됐다. 수감된 많은 원생은 부랑아와는 거리가 멀었다. 상당수는 부모나 연고자가 있었다. 공무원들이 실적을 채우기 위해 납치도 서슴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렇게 끌려간 어린이와 청소년이 1957∼78년에만 최소 1만 명으로 추정됐다.
○ “보상과 명예회복 위한 특별법 필요”
일제강점기 선감도 바닷가에 모인 원생들이 일본인 교관에게서 칠판에 쓰인 내용을 교육받고 있다. 칠판에 천황폐하(天皇陛下)라는 글자도 보인다. 경기도 제공
보고서에는 현재 생존한 원생 29명을 심층 면접해 파악한 인권 유린 실태가 드러나 있다. 보고서는 ‘부랑아의 구제가 아니라 절멸의 대상으로 보는 일종의 제노사이드(학살) 성격을 갖는 것 아닌가 보인다’고 적시했다. 생존자들은 심각한 트라우마를 겪고 있다. 한 원생은 1차 구술조사가 끝나자 “어디론가 강제로 끌려갈지도 모른다”며 조사 내용 반환을 요청했다.
뒤늦게나마 지난해 1월 경기창작센터 인근 컨테이너에 유물과 사진, 영상물을 전시한 선감역사박물관이 개관했고 위령제도 열었다. 창작센터에서 약 600m 떨어진 야산에는 선감학원 희생자 일부 유해와 유물이 발굴된 공동묘지가 있다.
경기도 공무원과 도의원, 생존자 등으로 구성된 ‘경기도 선감학원사건 피해지원 및 위령사업위원회’는 올해 유해 발굴, 추모공원 조성 등을 추진한다. 정대운 위원장(경기도의원)은 “제주4·3사건이나 노근리 양민학살사건처럼 국회에서 특별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남경현 기자 bibulu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