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 더랩에이치 대표 조직 커뮤니케이션 전문가
내가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딱 한 가지, 내가 그 사람을 대하는 방식뿐이다. 혼자 불평과 걱정만 해봐야 그가 나를 대하는 방식을 바꿀 가능성이 없다. 물론 나를 불편하게 하는 사람과 마주하고 내가 안 하던 말이나 행동을 그에게 하는 것은 생각만 해도 부담스럽다. 문제를 더 크게 만들지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한다. 더 많은 경우 “해봐야 변화되는 것은 없을 거야”라고 스스로에게 말하며 당하고 있는 나를 합리화하게 된다.
국가기관으로서는 처음으로 국가인권위원회가 1506명을 대상으로 직장 내 괴롭힘 실태를 조사했다. 직장인 4명 중 3명(73%)이 최근 1년간 직장에서 존엄성을 침해받거나 적대적, 위협적, 모욕적인 경험을 한 차례 이상 한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한 달에 한 번 이상 괴롭힘을 당하는 사람도 절반(47%)에 가깝다. 세 명 중 두 명(67%)은 직장 내 괴롭힘 때문에 이직을 고민한 적이 있으며 최근 1년 안에 직장을 그만둔 경험이 있는 사람 가운데 절반(48%)은 괴롭힘 때문에 직장을 그만두었다.
이러한 통계를 보면서 “그래, 절반 이상은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잖아…” 혹은 “무언가 해봐야 절반은 가해자에게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잖아”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다른 각도에서도 한번 바라보자. 하나는 그래도 어떤 방식으로든 대응을 해야 무엇인가 그 사람에게 변화가 일어날 가능성이 생긴다는 점이다. 또 하나는 내가 대응하는 방식을 어떻게 바꿔야 가해자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지를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직장 내 괴롭힘은 개인뿐 아니라 집단을 대상으로도 행해진다. 2015년, 휴일인 크리스마스 새벽에 회사 단합대회의 일환으로 무리하게 지리산 등반을 하다가 한 가장이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몇 주 전에는 국내 대표 은행이 신입 직원들에게 100km 행군을 시키면서 여성들에게 피임약을 제공했다가 문제가 되었다. 이 은행은 이제야 직원 행군 정책에 대해 변화를 고민할 것이다. 현실적으로 사고가 터지거나 누군가 문제를 제기하기 전에는 변화하지 않는다. 매년 일상적으로 해오던 것을 문제라고 바라보지 않기 때문이다. 거절이 우리 삶에서 중요한 이유다.
문제가 심각해지기 전에 말을 꺼내는 것이 좋다. 어떻게 말해야 할까. 첫째, “당신이 내게 이렇게 할 때, 나는 이렇게 느낀다(불편하다, 화가 난다, 마음이 힘들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둘째, “당신과 잘 지내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게 이런 말이나 행동은 삼가 달라”라고 말하는 것이다. 가슴이 떨려서 얼굴 보고 말하기가 도저히 힘들다면 서면으로 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믿을 만한 전문가에게 상담을 받거나 때로는 고충을 털어놓을 수 있는 소셜 미디어를 통해 문제를 제기해도 된다.
‘해봐야 소용없다’거나 ‘했다가 잘못되면 어떡하나’라는 걱정을 할 수 있다. 그래서 아무 대처를 하지 않겠다면 그것도 자신의 선택이다. 하지만 내게 다른 선택이 있을 수 있다는 점, 내 안에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그 사람을 대할 힘과 지혜가 있다는 것도 생각해봤으면 한다. 그가 나를 계속 괴롭히도록 놔두기에는 내 삶이 너무 소중하다.
김호 더랩에이치 대표 조직 커뮤니케이션 전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