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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동정민]적반하장 동생, 지쳐가는 형님

입력 | 2018-01-24 03:00:00


동정민 파리 특파원

“올림픽 정신은 다리를 놓는 것이지 결코 벽을 쌓는 것이 아니다.”

20일 스위스 로잔 올림픽박물관 2층 기자회견장. 왼쪽에 김일국 북한 체육상, 오른쪽에 도종환 대한민국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두고 카메라 앞에 선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의 표정은 감동으로 가득 차 있었다.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의 엔트리 확대는 상대팀과의 형평성에 어긋나는 예외적인 상황인데도 IOC가 더 적극적이었다. “경기당 최소한 북한 선수 5명은 넣어야 단일팀 아니냐”며 한국을 압박할 정도였다.

한국 여론은 “남한 선수들의 기회를 박탈하는 건 정치가 스포츠에 개입하는, 올림픽 정신 위배”라며 반발하지만 IOC는 “평화로운 사회를 위한 조화로운 인류 개발이라는 올림픽 가치에 맞다”고 설명한다. 정치가 분열시킨 남과 북을 스포츠가 하나로 묶었다고 믿는 분위기였다.

유럽 언론들도 북한의 평창 겨울올림픽 참여를 우려보다는 기대의 시선으로 보고 있다. 한창 한반도 위기가 고조되던 지난해 안전을 이유로 평창 올림픽 불참까지 고려했던 독일과 프랑스는 이제는 국가원수의 평창 올림픽 기간 방한이 확정적이다.

그러나 더없는 호재라고 여겼던 북한의 평창 올림픽 참여는 정작 문재인 정부엔 적잖은 악재가 되고 있다. 예상치 못한 국민적 반발에 청와대도 당황하는 듯하다.

한반도기를 든 공동입장이나 남북 단일팀은 이미 전례가 많다. 시일이 촉박하긴 하지만 우리 여자 아이스하키 선수 몇 명의 희생은 한민족의 감동 레퍼토리로 충분히 양해가 될 것으로 여겼을 테다. 2002년 통일축제 한마당에 내려온 조명애가 3년 뒤 한국 CF를 찍을 정도로 인기를 끌었으니 실세 현송월과 북한 예술단의 방문에 더 큰 신드롬을 예상했을지도 모른다.

현 정부가 간과한 건 어느새 싸늘하게 식어버린 북한을 향한 국민의 시선이다, ‘남북은 한민족’이란 대의명분이 모든 문제와 갈등을 해결하는 ‘만능열쇠’가 아니다. 세대가 흘러 남한의 젊은층엔 북한은 언젠가 함께 살 ‘가슴 따뜻한 동족’이라기보다 ‘짊어지기 싫은 짐’이라는 인식이 강해졌다.

한반도기를 들고 공동입장하는 것이 남북 관계의 새로운 지평을 열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에도 믿음이 잘 가지 않는다. 2000년부터 2007년까지 국제 경기마다 한반도기를 들었지만 그 기간 북한은 핵과 미사일을 개발하며 꾸준히 도발을 준비했다.

수틀리면 난장을 치고 아쉬우면 찾아와 손 내미는 못난 동생을 받아주는 것도 한두 번이다. 게다가 그 동생은 늘 적반하장이다. 안 되는 규정까지 바꿔가며 기껏 평창 겨울올림픽에 초대했더니 “인기 없는 대회를 우리가 구원했다” “잔칫상이 제사상이 될 수 있다”며 ‘감 놔라 배 놔라’ 한다.

북한은 남한 정권이 바뀌면 금강산 관광도, 개성공단도 바로 재가동될 것으로 믿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제아무리 북한과의 대화를 강조하는 정권이라도 민심을 역행해서 북한을 도와줄 수는 없다. 이 모든 게 북한의 업보다.

로잔에서 북한의 일거수일투족을 취재하던 일본 기자들은 기자와 북한 대표단과의 짧은 한국어 대화가 끝나면, 다가와 뭐라고 했는지 영어로 물었다. 언어가 같다는 건 그만큼 마음 통하기도 쉽다. 북한은 평창 올림픽의 성공에 최대한 협조하고 올림픽 이후에는 한국과 핵문제에 대한 논의를 진심으로 시작해야 한다.

대책 없는 동생을 보듬는 형님의 인내심도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
 
동정민 파리 특파원 ditt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