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악한 여자가 사람들에게 못된 짓만 하다가 죽었다. 그러자 악마들이 여자를 불 속에 던져버렸다. 수호천사가 여자를 가엾이 여겨 그녀가 생전에 텃밭에 있는 양파 한 뿌리를 뽑아 거지에게 준 적이 있다며 신에게 선처해 달라고 했다. 신은 여자를 그 양파로 끌어올릴 수 있으면 그렇게 해보라고 했다. 천사가 양파를 내밀자 여자가 붙잡고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여자가 올라가는 것을 보자 다른 죄인들이 매달렸다. “이건 너희들 것이 아니고 내 양파야.” 여자는 이렇게 말하며 그들을 걷어찼다. 그러자 양파가 끊어지면서 여자는 다시 불 속으로 떨어졌고, 천사는 울면서 그곳을 떠났다.
중요한 것은 양파가 아니라 그 속에 담긴 연민의 마음이었지만 여자에게는 그것이 없었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라면 가능했을지 모르지만, 여자는 자신만을 생각한 나머지 구원의 가능성을 스스로 차단해버렸다.
그러나 그녀는 조시마 장로가 죽었다는 말을 듣자 알료샤의 무릎에서 내려왔다. 절대적으로 믿고 따르고 존경했던 장로의 죽음으로 절망하고 있는 그를 향한 안쓰러움에서 그렇게 한 것이다. 그녀는 우화에 나오는 사악한 여자가 아니었다. 그녀가 보내는 연민의 눈길을 대하는 순간, 알료샤는 모두가 ‘더러운 여자’라고 생각하는 그녀에게서 ‘사람을 사랑할 줄 아는 보물 같은 영혼’을 발견했다. 두 사람은 서로를 향한 안쓰러운 눈길과 몇 마디 말을 붙들고, 자신들이 빠져 있던 극단적인 자학과 불신, 절망의 늪에서 올라올 수 있었다.
그렇다. 타자를 향한 아린 마음이 발휘하는 놀라운 힘. 이것이 도스토옙스키가 양파의 우화를 통해 전하고자 했던, 어쩌면 그의 소설들을 관통하는 메시지였다.
왕은철 문학평론가·전북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