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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주성원]‘쌀딩크’ 박항서

입력 | 2018-01-25 03:00:00


선수 때부터 머리숱이 적었다. 미드필더가 링커로 불리던 시절, 팬들은 악의(惡意) 없이 그를 ‘대머리 링커’로 불렀다. 단신(166cm)의 약점을 부지런한 몸놀림으로 극복해 국가대표로도 뛰었다. 1988년 은퇴 뒤 한동안 잊혀졌던 그는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다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폴란드전서 골을 넣은 황선홍이 달려와 코치인 그를 끌어안은 명장면 때문이다.

▷감독 인생은 화려하지 않았다. 거스 히딩크 감독에게 국가대표 감독직을 물려받았지만 2002년 부산아시아경기 동메달에 그쳤다. 프로 감독으로 1부 리그 우승도 없었다. 급기야 치고 올라오는 젊은 후배들에게 밀려 몇 년간 실업자로 살기도 했다. 국내 3부 리그 격인 창원시청을 지도할 때 베트남 축구협회와 인연이 닿았다. 지난해 10월 새 도전에 나섰다.

▷축구는 잘하지 못해도 그 열기만큼은 뜨거운 베트남 국민들은 처음엔 한국 3부 리그 출신 대표팀 감독을 탐탁지 않게 여겼다. 그전까지 쓰던 포백(4명 수비)을 스리백으로 바꾸자 갑작스러운 전술 변화에 비판 여론이 들끓었다. 그러나 그는 조직력과 기동력을 극대화한 이 전술로 보란 듯 23일 베트남을 아시아축구연맹(AFC) 23세 이하 챔피언십 결승에 진출시켰다. 베트남 축구 사상 최고 성적이다. 2002년 한국의 광희(狂喜)가 베트남에서 재현됐다. 박 감독은 ‘베트남의 히딩크’라는 새 별명을 얻었다. 베트남 주요 산물인 쌀을 빗댄 ‘쌀딩크’라는 별명도 생겼다.

▷박 감독은 선전(善戰)의 원동력으로 베트남 선수들의 강한 정신력을 꼽았다. 미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나라, 중국에도 당당하게 맞선 나라가 베트남이다. 최근 급속한 경제성장의 배경도 의지와 근면이다. 한국은 베트남에 가장 많이 투자한 나라고 베트남은 한국인이 가장 많이 찾는 동남아 국가다. 돈독해지는 한국과 베트남 관계에 박 감독의 ‘매직’이 힘을 더했다. 베트남은 27일 우즈베키스탄과 결승전을 치른다. 기적은 끝나지 않았다. 2002년 히딩크 감독이 그랬던 것처럼 박 감독도 아직은 배가 고프다.

주성원 논설위원 sw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