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인생은 화려하지 않았다. 거스 히딩크 감독에게 국가대표 감독직을 물려받았지만 2002년 부산아시아경기 동메달에 그쳤다. 프로 감독으로 1부 리그 우승도 없었다. 급기야 치고 올라오는 젊은 후배들에게 밀려 몇 년간 실업자로 살기도 했다. 국내 3부 리그 격인 창원시청을 지도할 때 베트남 축구협회와 인연이 닿았다. 지난해 10월 새 도전에 나섰다.
▷축구는 잘하지 못해도 그 열기만큼은 뜨거운 베트남 국민들은 처음엔 한국 3부 리그 출신 대표팀 감독을 탐탁지 않게 여겼다. 그전까지 쓰던 포백(4명 수비)을 스리백으로 바꾸자 갑작스러운 전술 변화에 비판 여론이 들끓었다. 그러나 그는 조직력과 기동력을 극대화한 이 전술로 보란 듯 23일 베트남을 아시아축구연맹(AFC) 23세 이하 챔피언십 결승에 진출시켰다. 베트남 축구 사상 최고 성적이다. 2002년 한국의 광희(狂喜)가 베트남에서 재현됐다. 박 감독은 ‘베트남의 히딩크’라는 새 별명을 얻었다. 베트남 주요 산물인 쌀을 빗댄 ‘쌀딩크’라는 별명도 생겼다.
주성원 논설위원 sw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