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성북구 동선동의 권진규 아틀리에 입구. 권진규의 실루엣 사진과 부조작품이 인상적이다.
구상과 추상을 넘나들며 한국 근대조각의 틀을 마련한 권진규. 1959년 일본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그는 서울에 아틀리에를 마련했다. 세상을 떠날 때까지 이곳에서 창작에 매진하며 ‘자소상(自塑像)’ ‘지원의 얼굴’ 등 수많은 명작을 탄생시켰다.
서울 성북구 동선동 성신여대 옆 작은 골목을 따라 계단을 몇 번 꺾어 올라가면 막다른 길이 나온다. 거기 권진규의 아틀리에가 있다. 이 작업실은 권진규가 직접 지었다. 내부로 들어서면 높게 탁 트인 천장 아래로 진열대, 받침대, 다락방, 나무 계단과 선반이 눈에 들어온다. 벽돌 가마, 우물, 흙 저장 공간도 있다. 테라코타 조각가의 작업실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풍경이다.
권진규가 세상을 떠난 뒤 아틀리에는 그의 여동생이 관리해왔다. 그러다 2006년 여동생이 내셔널트러스트 문화유산기금에 기증하면서 공공의 공간이 되었다. 내셔널트러스트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곤 사전 신청을 받아 매달 하루 이곳을 개방한다.
아틀리에의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작업 공간 옆 살림채에 권진규의 큼지막한 실루엣 사진이 걸려 있다. 그는 사진 속에서 먼 데를 응시한다. 아틀리에엔 ‘자신의 속을 들여다보고 있는 얼굴/…/권진규가 테라코타 되었다’고 노래한 황동규의 시도 걸려 있다. 얼굴을 통해 삶을 성찰했던 권진규. 그는 이곳에서 영원한 예술이 되었다.
이광표 논설위원·문화유산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