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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썰매 캡틴, 5대양 누빈 기운을 전합니다”

입력 | 2018-01-25 03:00:00

[당신의 땀 응원합니다]<12> ‘아덴만 영웅’ 석해균 선장이 봅슬레이 원윤종에게




‘아덴만의 영웅’ 석해균 선장이 봅슬레이 국가대표 원윤종에게 전하는 응원 메시지 보드를 들고 왼 주먹을 쥐며 선전을 기원하고 있다. 2011년 당시 총상을 입고 신경이 마비됐던 석 선장의 왼손은 끈질긴 재활로 상태가 많이 호전됐다. 창원=김배중 기자

“원윤종 ‘캡틴’에게 배를 타고 다녔던 ‘5대양 6대주’의 정기(精氣)를 전합니다. 꿈은 이루어질 겁니다. 파이팅 하세요.”

‘아덴만의 영웅’ 석해균 선장(66)이 한국 봅슬레이 국가대표 파일럿이자 평창 겨울올림픽 한국선수단 기수를 맡은 원윤종(33·강원도청·사진)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전했다. 소말리아 해적들에게 납치돼 6발의 총상을 입고 죽을 고비를 맞았지만 기적처럼 이겨낸 경험을 올림픽이라는 큰 무대를 앞둔 원윤종에게 건네며 선전을 바랐다.

2016년 2월 독일 쾨니히세에서 열린 국제봅슬레이스켈레톤연맹(IBSF) 8차 월드컵 대회에서 1위로 결승선을 통과한 뒤 두 손을 번쩍 치켜든 봅슬레이 2인승의 간판 원윤종(앞). 2015∼2016 시즌 원윤종-서영우 조는 세계랭킹 1위를 기록했다. 동아일보DB

원윤종은 봅슬레이의 불모지던 한국을 단숨에 올림픽 메달을 넘볼 수 있는 수준으로 끌어올린 한국 봅슬레이계의 ‘간판’이다. 2010년 성결대 체육교육과 학생이던 그는 학교에 붙은 ‘썰매 국가대표 선발’ 포스터를 보고 응시했다 봅슬레이와 인연을 맺었다. 체육교사를 꿈꿨던 원윤종의 인생이 요동친 순간이다. 이후 과 후배인 서영우(27·경기BS연맹)와 콤비가 됐다. 원윤종은 썰매를 조종하는 ‘파일럿’을, 서영우는 썰매가 피니시 라인을 통과하면 썰매를 세우는 ‘브레이크맨’ 역할을 맡았다.

국내에 마땅한 훈련장소도 없고 외국 선수들이 타던 중고 썰매를 구입해 써야 했지만 원윤종-서영우 콤비는 포기하지 않고 훈련에 매진했다. 썰매 종목은 선수와 썰매의 합산무게가 무거울수록 가속이 붙어 기록을 단축시킬 수 있는 종목이다. 때문에 평범한 체형이던 두 사람은 ‘증량’을 위해 매 끼니 폭식을 하는 열의를 보였다.

2014년 소치 겨울올림픽에 출전해 18위에 오르며 가능성을 보여준 원윤종과 서영우는 2015∼2016시즌 들어 잠재력을 폭발시켰다. 월드컵 1, 2, 4차 대회 동메달을 획득한 그는 5, 8차 대회 1위에 올랐다. 그해 세계랭킹 1위는 원윤종과 서영우의 몫이었다.

빛이 있다면 그림자도 있는 법. 2016∼2017시즌 세계랭킹이 두 계단 하락한 원윤종 콤비는 지난해 세계선수권 대회에서는 21위라는 성적표를 받아들어야 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난해 10월 원윤종은 훈련 도중 봅슬레이 전복 사고로 어깨와 허리에 부상까지 당했다. 2017∼2018시즌 1∼3차 대회에서 10위, 13위, 6위에 그치는 등 부진하자 시즌을 접고 올림픽 경기가 열릴 평창에서 수백 번 연습주행을 하며 ‘올림픽 대비’에 들어갔다. 홈 이점이 큰 봅슬레이 종목의 특성을 고려한 전략이다.

한국선수단 기수가 된 원윤종에게 석 선장은 “봅슬레이 캡틴이 대표팀의 리더이자 얼굴이 됐다”며 기뻐했다. 선박을 이끌고 바다를 누비던 때를 회상하던 그는 “어느 조직이든 리더가 바로 서야 전체가 잘 돌아간다”라며 “어깨가 좀 더 무거워진 만큼 경기장 안팎에서 대한민국을 위해 솔선수범해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원윤종의 몸 상태를 잠시 걱정했지만 부상과 부진은 반드시 극복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석 선장은 “다쳤던 순간을 생각하며 인상을 찡그리면 아무것도 할 수 없더라. 늘 긍정적인 생각, ‘올림픽에서 금메달 딸 수 있다’ 이런 즐거운 생각을 하라”고 말했다. 또한 “뛰다 한번 넘어졌으니 이제 다시 일어나서 뛸 일만 남은 거다. 여기 넘어졌다 다시 일어나 뛰고 있는 나도 있지 않나”라고 말하며 미소를 지었다.

석 선장의 응원메시지를 전달받은 원윤종은 “선장님의 경험이 녹아든 응원 덕에 큰 용기를 얻었다. 남은 기간 부상을 조심하고 컨디션 유지를 잘해서 올림픽에서 모든 것을 쏟아내겠다”고 다짐했다. 기수를 맡은 데 대해 “어깨가 무겁다. 선장님 말씀대로 팀을 위해서든 국가대표 전체를 위해서든 솔선수범하고 책임감 있게 선수들에게 한발 다가가서 잘 이끌겠다”고 말했다.

창원=김배중 기자 wante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