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동아일보 30000호]칠흑 어둠속, 해방의 열망으로 동아일보가 태어났노라

입력 | 2018-01-26 03:00:00

1920년 4월 1일자 창간사, 현대 문장으로 소개합니다




《엄혹했던 일제강점기, 동아일보 창간은 역사의 책무이자 시대의 희망이었습니다. 1920년 4월 1일자 창간호 1면에 실린 창간사는 이러한 취지에 걸맞게 생명력 가득한 명문장이었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다 보니 이 시대의 우리가 옛 문투의 창간사를 이해한다는 것은 다소 어려운 일이 되었습니다. 이에 쉽고 편안한 문장으로 바꿔 독자 여러분께 소개합니다. 그 의미를 함께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1920년 4월 1일자 동아일보 1면. 붉은 선이 창간사.


푸른 하늘에 태양이 빛나고 드넓은 대지에 맑은 바람이 불도다. 산하엔 초목이 무성하고 온갖 꽃들이 만발하며 솔개가 날고 물고기가 힘차게 뛰어오르니 천하 만물에 생명과 광명이 충만하도다.

동방의 무궁화동산, 2000만 조선 민중은 새로운 공기에서 호흡하며 새로운 빛을 목도하노라. 이는 실로 살아 있음이고 부활이다. 혼신의 힘으로 저 먼 길을 가고자 함이니 그것은 다름 아닌 자유의 발달이다.

세계 인류의 운명은 지금 일대 전환점을 맞았도다. 차르 황제나 카이저 황제 같은 구시대의 발상은 떠나가고, 자본의 탐욕은 신성한 노동의 도전에 직면했으며, 무력에 기초한 침략주의 제국주의는 평화 정의 인도주의에 길을 내주는 형국이다. 인민 노동 정의에서 비롯된 자유정치 문화창조 민족연맹이 우리 앞에 신세계를 펼쳐 보이도다.

강제병합 10년, 민중은 악몽의 늪에

우리는 몽상가가 아니라, 현실에 발을 딛고 있는 사람들이다. 어찌 하늘과 이상만 바라보고 이 땅과 현실을 망각하리오. 세계의 대세를 있는 그대로 논하고자 함이니, 한쪽엔 새로운 세력이 있고 또 한쪽엔 이와 대립하는 구세력이 있어 서로 투쟁하는 형국이 아닐 수 없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에서 해방과 개혁의 운동이 있는가 하면 이를 억압하려는 움직임이 분명 존재한다. 이는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지만 아, 신구의 충돌과 진보 보수의 다툼이 어찌 이 시대에만 있는 일일까. 그건 인류 역사 어느 시대에도 늘 있어 온 일이었다.

추위가 가고 볕이 다시 드니, 쌓인 눈과 단단한 얼음이 녹고 온갖 만물이 하나둘 다시 살아나도다. 이는 분명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의미한다. 그 의연한 봄의 전령을 누가 감히 거부할 것인가. 신구의 충돌은 그 자체로 새로운 시대에 들어섰음을 보여주는 것이고, 북소리를 울려 옛 시대의 몰락을 알리는 것이다. 저 도도한 흐름은 사람의 힘으로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니, 새로운 시대가 분명 승리할 것이다.

억압 뚫고 新시대의 서광 한줄기가

물론, 이미 새로운 시대가 왔다고 말하려는 건 아니다. 새로운 세계가 벌써 전개되었다고 말하려는 것도 아니다. 칠흑 같은 어둠이지만, 투쟁과 진통을 거쳐 저 멀리 수평선에 신문명의 웅대한 한 자락과 신시대의 서광 한 줄기가 보이기 시작하도다. 자 보라, 서광 한 자락을 위해 수천만 민중이 하나같이 모두 몸부림치고 있음을.

이러한 시대에 동아일보가 태어났도다. 아, 동아일보 창간을 어찌 우연이라 할 것인가. 돌아보건대 한일강제병합이 일어난 지 10년, 그 사이에 조선 민중은 일대 악몽의 늪에 빠져야 했다. 조선 민중은 그 또한 사람인지라 어찌 사상과 희망이 없었을까만 그것을 드러낼 수 없었다. 그 또한 사회인지라 어찌 집단적 의사 표현의 충동이 없었을까만 능히 이뤄내지 못했다. 그 또한 민족인지라 어찌 고유한 문명의 특장과 생명의 미묘함이 없었을까만 그것을 드러내지 못했다. 부르짖고 싶어도 부르짖을 수 없었고, 달음질치고 싶어도 몸을 제대로 가눌 수 없었다. 지난 10년, 2000만 조선 민중은 그렇게 악몽에 빠져 있었다.

그렇기에 그곳은 바로 사지(死地)였고 함정이었다. 자유가 사라져 발전을 기약하기 어려운 곳이었다. 조선 민중은 실로 고통스러웠다. 혹은 울고 혹은 노하였다. 그 분노, 어찌 지금 여기 살고 있는 우리들만의 분노일 것인가. 조선 민중의 삶은 늘 이 땅의 역사와 함께했으니, 4000년 역사적 생명까지 모두 분개하도다.

그러나 시대가 변하여 언론의 자유가 다소 용인된다고 하니, 조선 민중은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고 그것을 전달해주는 친구를 열망하고 기대하고 있다. 이에 동아일보가 세상에 태어났으니 그것을 어찌 우연이라 말할 수 있으리오. 실로 민주의 열망과 시대의 동력으로 태어난 것이다.

민주-문화주의 지지하는 민족 언론

이에 그 뜻을 선명하게 밝힘으로써 창간사를 대신하고자 한다.

1. 조선 민중의 표현기관으로 자임하노라.

소수의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특권계급의 기관이 아니라 2000만 민중 전체의 기관으로 자임한다. 그 민중의 의사와 이상과 목표와 희망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 보도할 것을 약속하노라.

2. 민주주의를 지지하노라.

이는 국체(國體)나 정체(政體)의 형식적 민주주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인류 삶의 원리이자 정신을 의미한다. 무력을 배척하고 개인의 인격에 기초한 권리와 의미를 주장한다. 따라서 국내 정치에서는 자유주의요, 국제 정치에서는 연맹주의다. 사회생활에서는 평등주의요, 경제에서는 노동 본위의 협조주의다. 특히 동아시아에 있어선 각 민족의 권리를 인정하며 친목과 단결을 추구한다. 전 세계에 있어서는 정의와 인도를 승인하고 평화를 추구한다. 다시 말하건대, 폭력과 무력을 거부하고 양심을 존중함으로써 삶의 다양한 관계를 규율코자 함이니, 옛 왕도의 정신이 바로 이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는 만천하 백성들의 경복(慶福)과 광영을 위하여 민주주의를 지지하노라.

3. 문화주의를 제창하노라.

이는 개인이나 사회의 삶을 충실하고 풍부하게 하기 위함이다. 곧 부를 증진하고, 정치를 완성하고, 도덕을 순수하게 하고, 종교를 풍요롭게 하고 과학을 발전시키고 철학과 예술을 심원하고 오묘하게 하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조선 민중이 세계 문명에 공헌할 수 있도록 하고 삼천리강산을 문화의 낙원으로 만들기 위해 소리 높여 외치는 것이니, 이는 곧 우리 조선 민족의 사명이요 생존의 가치가 아닐 수 없다.

요컨대, 동아일보는 태양의 무궁한 광명과 우주의 무한한 생명을 삼천리강산, 2000만 민중 속에서 실현하고 나아가 자유의 발달에 이르고자 한다. 그리하여 1) 조선 민중이 각자의 인성과 천명을 바르게 하고, 서로 화합하는 문화를 수립하도록 하고 2) 조선 민중이 자신의 위치에서 차별 없이 일대 낙원을 건설하는 데 힘을 모으도록 하는 것이 동아일보 창간의 근본적인 취지다.

2000만과 생사진퇴 함께하길 약속

그러나 동아일보의 앞날은 심히 험난하도다. 그 운명을 과연 누가 예측할 것인가. 그럼에도 우리는 오직 조선 민중의 동지로서, 그들과 더불어 생사 진퇴를 함께하기를 약속하노라.

● 8개면 발행 창간호엔 어떤 기사가
항일 조선인 진압…늘어난 여성 진학…
연재소설 ‘부평초’…스코필드 기고문…


동아일보는 총 8면으로 구성된 창간호 때부터 정치, 경제, 사회, 국제 등 다양한 분야의 기사를 게재했다. 가장 눈에 띄는 특징 중 하나는 일제 치하라는 엄혹한 현실 속에서도 프랑스, 러시아, 중국, 이탈리아, 미국 등 이른바 주요국에서 발생한 뉴스를 2면에 대거 배치하는 ‘국제화된 모습’을 보였다는 점이다. 당시 사회적 논란이 됐던 ‘태형(笞刑) 폐지’ 관련 기사가 비중 있게 실렸는가 하면 조선은행이 자금 유출을 우려해 금리를 인상하기로 했다는 경제 정보도 담겼다.


쑨원 친필 휘호… 佛총리 연설… 美상비병 규모 결정

‘세상을 보는 창’의 역할은 한반도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동아일보 창간호 2면은 사실상 오늘의 국제면을 연상케 한다. 중국 건국의 아버지 쑨원(孫文)이 본보 창간호에 보내온 친필 휘호 ‘天下爲公(천하위공·①)’. 천하는 한 사람의 것이 아닌 공공의 것이라는 뜻으로 예기(禮記)에 나오는 말이다. 알렉상드르 밀랑 프랑스 총리의 의회 연설(②)과 미국 의회의 육군 상비 병력 규모 결정(③) 같은 국제기사들이 2면 앞부분에 배치됐다. 중국의 지린(吉林) 지역 관청이 일본의 요청에 따라 ‘무력으로 조선인을 해산했다’는 기사(④)도 눈에 띈다. 당시 간도에서 무장 항일 세력들을 강제 진압했다는 뜻이다.


조선인 태형 폐지

요즘 신문의 ‘기획면’을 보는 느낌이다. 조선인에게만 적용되던 ‘태형(笞刑)’이 폐지됐다는 것(①)을 머리기사로 다뤘다. 태형이 폐지되는 게 마땅하다고 강조하는 건 물론이고, 이로 인해 재소자 수가 향후 얼마나 늘어날 것인지도 분석했다. ‘변해가는 학생 기풍’이란 제목(②)으로 여성들의 진학이 늘어나고 있는 시대상을 보여주는 트렌드 기사도 있다.


佛소설 ‘집없는 아이’ 번안

‘민우보(閔牛步)’라는 필명으로 연재된 민태원(閔泰瑗)의 연재소설 ‘부평초(浮萍草·①)’가 실려 있다. 이 소설은 프랑스 작가 엑토르 말로의 ‘집 없는 아이’의 일본어 번역판을 번안(飜案)한 것이다. 중앙불교전문학교(현 동국대) 교장을 지낸 석전 박한영 스님의 축사 ‘동아일(東亞日) 동아일이여’(②)도 부평초 아래에 게재돼 있다.


스코필드 ‘조선 발전의 길은…’

낯익은 외국인의 이름이 눈에 들어온다. 1919년 3·1운동 당시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 교수로 재직하며 민족 대표 33인을 도왔고, 한국 독립의 정당성을 해외에 알린 프랭크 윌리엄 스코필드(한국명 석호필) 박사의 글(①)이 지면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고 있다. 스코필드 박사는 조선이 성장하려면 교육, 근면성, 재정(경제력), 도덕성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