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종으로 본 東亞 30000호
《 동아일보가 26일 지령 3만 호를 발행하기까지 격동의 한국 현대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동아는 이를 실사구시의 자세로 노력했고, 수많은 특종이 그 과정에서 탄생했다. 일제강점기에 정간 폐간 등의 탄압 속에서도 평양의 만세 소요를 특종 보도하는 등 민족 언론의 자부심을 지켰다. 광복 후에는 군사정권의 철권통치에 맞서 권력을 견제하고 비리를 파헤쳤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새 정부 인사에 대한 도덕성 검증도 철저했다. 최근에는 시민사회의 변화를 선도하는 다양한 기획물을 선보이고 있다. 동아일보 특종들을 통해 한국 현대사의 굴곡을 다시 돌아본다. 》
○ 일제에 맞서고 광복 후 시대를 밝히다
1932년 4월 윤봉길 의사 의거 1932년 4월 29일 윤봉길 의사(앞줄 왼쪽에서 세 번째)가 중국 상하이 훙커우공원에서 폭탄을 던진 뒤 일본 헌병에게 붙잡혀 연행되고 있다. 동아일보는 호외를 통해 ‘조선인으로 판명, 윤봉길, 연령 25세’라고 보도하면서 국내 언론으로는 처음으로 윤 의사의 의거 사실을 알렸다.
6·25전쟁 당시 발생한 ‘국민방위군 사건’도 동아일보의 특종 보도로 세상에 알려졌다. 1951년 2월 14일 백광하 기자가 쓴 ‘돈 밧고(받고) 징병해당을 눈 감어-방위소령에 이런 직책도 맛겨ㅅ나(맡겼나)?’라는 기사였다. 이 사건은 예비병력을 확보하기 위해 소집한 국민방위군의 사령관 김윤근 준장과 부사령관 윤익헌 대령 등 10여 명이 예산과 물자를 빼돌려 장병 1000여 명이 굶어죽은 부패 스캔들이었다. 백 기자는 당시 이 사건에 연루된 국회의원으로부터 수표 한 다발을 주겠다는 회유를 받기도 했지만 굴하지 않았다.
1967년 6월 금품선거 현장 포착 1967년 6월 8일자 3면에 게재된 부정선거 고발 특종 사진. 6·8 국회의원 총선을 앞둔 5일 동아일보 사진부 박성동 기자가 울산 국민학교(현 초등학교)에서 공화당원(× 표시가 된 사람)이 유권자에게 현금(↑표시)을 전달하는 장면을 포착해 촬영했다.
1968년 5월 30일 서울시내에는 동아일보 ‘호외’가 뿌려졌다. 김종필(JP) 당시 공화당 의장이 모든 공직에서 사퇴하겠다며 공화당에 탈당계를 제출했다는 내용이었다. 공화당 내 JP계 인사들이 박정희 대통령을 위한 3선 개헌은 저지해야 한다고 주장한 당내 항명 파동인 ‘국민복지회 사건’과 관련이 있다는 해석도 덧붙였다. 이 기사는 당시 공화당 정권 내부 권력투쟁을 공개하는 동시에 박 대통령의 3선 개헌을 암시한 것으로 정계에 큰 파장을 불러왔다.
○ 숨은 진실을 캐내고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다
1981년 3월 27일 오전 11시 반경 내설악 귀때기골 능선 암벽에서 휴식을 취하는 산양(천연기념물 제217호) 한 마리가 동아일보 취재진 카메라에 담겼다. 취재팀이 가슴까지 쌓인 눈을 헤치고 가파른 암벽을 오르며 29일 동안 산양을 추적한 끝에 거둔 쾌거였다. 산양은 전 세계적인 멸종위기종으로 ‘살아 있는 화석’으로 불렸다. 1969년 초 설악산에 5m의 폭설이 내려 떼죽음을 당한 후 멸종된 것으로 알려진 산양이 설악산에 생존해 있음을 동아일보가 세상에 알린 셈이다.
동아일보는 일본의 역사 왜곡의 실체를 심층적으로 파헤치기도 했다. 일본은 1983년 4월 고교 교과서 개편을 앞두고 1982년 7월 일본의 검정교과서를 공개했다. 검정교과서들은 일본의 한반도와 중국 침략을 ‘진공’으로, 탄압은 ‘진압’으로, 출병은 ‘파병’으로 왜곡했다. 또 우리 민중에 대한 수탈과 착취를 ‘양도’로 바꿨고 우리의 저항을 ‘폭동’으로 격하했다. 이에 동아일보는 일본의 교과서 왜곡의 문제점을 비판하는 기획기사와 사설로 연일 보도했다. 이후 국내는 물론이고 외국에서도 일본의 역사 왜곡 행위를 규탄하는 계기가 됐다.
1987년 1월 고문치사 박종철군 추모식 1987년 1월 20일 서울대 학생회관에서 열린 고 박종철 군 추모제 모습으로 같은 날 7면에 게재됐다. 박 군이 고문으로 숨졌고 경찰이 이를 은폐하려 했다는 사실은 동아일보의 끈질긴 추적 보도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고 6월 민주항쟁의 도화선이 됐다.
▼ 신도시 부실공사-옷로비 파헤쳐… 정의 위해 부릅뜬 눈 ▼
1996년 12월 北 일가족 등 17명 탈출 북한을 탈출해 홍콩에 머물던 김경호 씨 가족 16명과 사회안전부 안전원 최영호 씨가 김포공항에 도착한 모습이 동아일보 1996년 12월 10일자 1면에 실렸다. 당시 분단 이후 최대 규모의 집단 탈북으로 화제를 모았으며 동아일보는 이들의 탈북 과정을 특종 보도했다. 동아일보DB
○ 번영 속 부실, 부패를 파헤치다
1992년에는 대학입시 사상 초유의 후기대 입시가 연기되는 사건을 특종 보도했다. 그해 1월 21일 오전 경기 부천시 서울신학대에서 대입 시험지를 도난당한 사실을 1면 톱기사로 전했다. 이 대학 당직 근무자가 순찰 도중 본관 전산실에 보관 중이던 문제지 상자가 파손된 사실을 발견하면서 도난 사실이 알려졌다. 당시 윤형섭 교육부 장관은 사상 초유의 불상사에 사과하고 응분의 책임을 지겠다며 고개를 숙였다.
동아일보는 공직자의 도덕성을 철저하게 검증하는 기획기사 제작에도 앞장섰다. 김영삼 정부 시절인 1993년 첫 조각검증 보도는 국민적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그해 새 정부의 첫 조각이 발표된 직후 장관급 인사에 대한 검증 작업에 들어가 3월 2일자부터 박희태 법무부장관의 딸 편법 입학, 김상철 서울시장의 그린벨트 무단 형질 변경, 박양실 보건사회부 장관의 자녀 명의 땅 소유 등을 연이어 특종 보도했다.그 결과 김 시장 등은 임명된 지 열흘도 안돼 자진 사퇴했다. 동아일보 보도 후 공직자 검증은 모든 언론으로 확산됐다.
1990년 8월부터 1994년까지 동아일보에 매주 연재된 ‘남산의 부장들’은 심층 보도 연재물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남산…’은 중앙정보부의 핵심 부장들과 이들이 주도한 공작정치를 소재로 한국 정치의 이면을 파헤쳤다. 이 연재물은 1994년 박종철 군 치사 파문을 다룬 193회를 끝으로 막을 내렸지만 단행본으로 출간돼 베스트셀러를 기록했다.
동아일보는 1995년 10월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사건도 최초로 보도했다. 과거 군사독재 정권의 추악한 정경유착 실태를 파헤친 보도로 파장이 컸다. 이는 12·12쿠데타 및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지는 계기가 됐다. 검찰 수사 결과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이 재임 당시 각각 수천억 원의 비자금을 모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군부 출신 전직 대통령의 부도덕성을 고발하고 지도자의 자격에 대해 전 국민적인 관심을 갖게 만들었다.
1999년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옷 로비 사건’의 전모를 파헤친 것도 동아일보였다. 신동아그룹 최순영 회장의 부인 이형자 씨가 외화 밀반출 혐의를 받고 있던 남편을 위해 김태정 당시 검찰총장의 부인 연정희 씨에게 고가의 옷 로비를 한 이 사건은 청문회와 특별검사팀 조사까지 끌어냈다.
○ 밀레니엄, 심층 분석으로 시대를 선도하다
2002년 3월 30일자 1면에는 ‘체육복표 스포츠토토 2001년 사업권 선정, 고위층 친인척에 로비의혹’이라는 단독 기사가 실렸다. 체육복표 ‘스포츠토토’를 발행하는 한국타이거풀스가 체육복표 사업권을 따내는 데 도움을 받은 대가로 고위층에 불법 로비를 했다는 보도였고 이는 사실로 드러났다. 당시 타이거풀스는 체육복표 사업자로 선정되기 위해 김대중 대통령의 3남 김홍걸 씨 등에게 자신의 회사 주식을 제공했고, 이 과정에 개입한 사람이 미래도시환경 대표 최규선 씨였다. 이 로비 의혹 보도는 ‘최규선 게이트’로 이어졌다.
그해 10월 4일자 동아일보에는 1995년 지방선거와 1996년 제15대 총선 직전 당시 민주자유당과 신한국당이 옛 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에서 나온 돈을 선거자금으로 썼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안풍(安風) 사건’의 시작이었다. 계좌 추적이 진행되면서 유입 규모가 1000억 원이 넘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 사건은 당시 쓰인 선거자금이 안기부의 자체 자금임을 확인할 수 없다는 이유로 사건 당사자들이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국정원 특수활동비가 영수증을 첨부하지 않기 때문에 눈먼 돈으로 사용될 수 있어 정치자금의 전용 논란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2012년 4월 1일 경기 수원에서 20대 후반 여성이 조선족에게 살해당한 ‘오원춘 사건’은 수법의 잔혹함이 충격을 줬다. 특히 경찰의 늑장 대처를 놓고 비판이 쏟아졌다. 동아일보는 피해 여성의 신고전화가 경찰이 밝힌 통화시간보다 길었고 내용도 구체적이었음을 밝혀냈다. 경찰은 사건 당시 주변을 샅샅이 탐문했다고 했지만 동아일보가 직접 이 지역 주민들을 대면 조사한 결과 경찰의 방문은 거의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그해 동아일보 4월 6일자에 이 같은 내용이 보도되자 경찰은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동아일보는 다원화되고 있는 사회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혁신 작업도 계속했다. 경제 사회 문화 등 사회 전반의 현안에 대한 심층 분석 기획물을 다양한 형태로 다뤘다. 지난해 4월부터 6개월에 걸쳐 게재된 ‘청년이라 죄송합니다’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동아일보 특별취재팀이 전국 47개 대학 청년 140여 명을 인터뷰해 청년실업 실태와 대안을 온·오프라인으로 동시에 전한 크로스오버 기획으로 사회적 의제 형성에 기여했다. 동아일보의 특종을 향한 치열한 기자정신은 3만 호 이후에도 이어진다.
황태훈 beetlez@donga.com·김상훈·김지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