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 속 위기의 대학]<2> 거리로 나앉은 교직원들
22일 찾은 강원 동해시 한중대 교직원 전용 주차장이 텅 비어 있다. 갑작스러운 폐교로 일자리를 잃은 교직원들은 최소한의 안전망도 없는 상태에서 거리로 내몰렸다. 사학연금법 적용을 받는 이들은 실업급여를 받을 수 없다. 동해=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한중대에서 유일하게 마주친 교수 한 명은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자신의 승용차에 연구실 짐을 담은 라면상자를 싣고 있었다. 그는 “갑작스러운 폐교에 교수고 직원이고 다들 길에 나앉을 형편”이라며 “재취업할 곳도 마땅치 않고 먹고 살길이 막막하다”고 말했다.
전북 남원시 서남대 상황도 마찬가지였다. 18일 학교에서 만난 한 교수는 “시간강사 자리를 알아보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그는 2년 넘게 이어진 대학의 임금체불로 은행 대출은 물론이고 집까지 내다 팔았다. 가정도 깨졌다. 홀로 월세 원룸에 살고 있는 그는 “형편이 어려워 양육권 주장도 못 하고 이혼했다”면서 “지금도 양육비를 제대로 보내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뿐”이라며 고개를 숙였다.
전 한중대 행정직원 김만기(가명·52) 씨는 2015년 계속되는 임금체불을 견디다 못해 학교를 나왔다. 그는 한중대에서 9년이나 일했지만 학교를 그만둘 때에야 자신이 실업급여조차 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한국 대학의 80%를 차지하는 사립대의 교직원은 실업급여 대상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근로자는 실직하면 퇴직금과 별도로 고용보험기금을 통해 월 최대 180만 원씩 최대 9개월간 실업급여를 받는다. 하지만 사학연금법 적용을 받는 이들은 고용보험 가입 자체가 불가능하다. 사학연금은 10년 이상 가입해야 받을 수 있다. 전윤구 경기대 법학과 교수는 “법이 만들어질 때만 해도 학교만 세우면 학생이 모집되는 고도 성장기였고 대학의 폐교는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기에 이런 일이 생겼다”고 진단했다. 결국 김 씨는 한중대를 그만둔 후 골프장 잔디 깎는 일을 구할 때까지 8개월을 대출과 지인에게 빌린 돈에 의지해 살아야 했다.
○ 폐교 후 재산 청산도 쉽지 않아
한국에 대학이 급증한 건 1995년 김영삼 정부 시절 대학 설립 기준이 바뀌면서부터다. 그전까지 4년제 대학을 세우려면 최소 33만 m²의 학교부지와 부지 비용 외에 1200억 원 이상의 재원 등이 있어야 했다. 하지만 당시 교육부는 ‘백화점식 종합대학 일변도에서 벗어나 특성화된 대학이 필요하다’며 인가 기준을 확 낮췄다. 부실대 난립 우려가 제기됐지만 감사를 통해 사후관리를 하겠다는 입장이었다.
이후 ‘자고 나면 대학이 하나씩 생긴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대학이 늘었다. 전문대도 너도나도 4년제 대학으로 전환했다. 교육부의 관리감독은 말뿐이었다. 2013년에는 사학비리를 감독해야 할 교육부 감사담당자가 오히려 서남대 설립자에게 뇌물을 요구해 수년간 수천만 원을 받아 챙긴 사실이 적발되기도 했다. 이후 교육부는 “비리 대학이 문제”라며 부실 대학들에 관선이사를 파견했다. 그러나 한중대 직원들은 “2004년 이후 파견된 관선이사들은 정작 경영권을 쥐고도 대학 정상화 의지가 없었고 이사회에 참석해 수당만 챙겨갔다”고 꼬집었다.
학교가 무너지면서 교직원 임금은 체불됐다. 수년간 1인당 적게는 수백만 원에서 많게는 1억 원 이상 임금이 밀렸다. 전윤구 교수는 “앞으로 학령인구 감소로 ‘서서히 말라죽는’ 대학들이 늘게 되면 여기저기서 임금 체불 문제가 터져 나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들이 체불 임금을 받을 길은 폐교 후 대학의 재산을 청산하는 것뿐이다. 하지만 청산 자체가 쉽지 않고 기약도 없는 게 문제다. 우남규 한국사학진흥재단 대학구조개혁지원팀장은 “지방 대학들은 대체로 시에서 떨어진 외곽에 자리한 데다 부지나 건물 덩치가 워낙 커 사겠다는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다”며 “재활용 가능성이 극히 낮은 게 폐교 대학 청산의 숙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