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저 페더러
전용배 단국대 스포츠경영학과 교수
그는 김연아 박태환처럼 아직 세계챔피언도 아니고 이제 메이저 대회 4강에 진출했을 뿐인데 왜 이렇게 스포트라이트를 받을까. 필자는 학생들에게 다음과 같은 문제를 시험으로 출제한 적이 있다. ‘김연아와 박태환보다 올림픽이나 세계선수권에서 훨씬 많은 메달을 딴 선수가 수두룩한데 광고와 스폰서십, 관심이 왜 그들에게만 집중될까.’ 마찬가지로 정현에게 환호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보다 테니스가 고급 이미지를 가졌다는 점이다. 즉, 주류에 대한 동경과 극복이다. 메이저 대회뿐만 아니라 남자프로테니스(ATP)투어 대회를 보면 대체로 선수와 관중 모두 백인이며 스폰서십 회사들도 고급 소비재를 취급하는 글로벌 기업이 주를 이룬다. 역사적으로도 유럽에서 테니스클럽의 폐쇄성은 골프를 능가한다. 서양에서 테니스는 고급 스포츠이고 골프는 대중 스포츠로 생각한다.
호주오픈에서 그의 여정은 도전이라는 단어로 설명이 가능하다. 신체조건이 경기 결과를 크게 좌우하는 남자 테니스는 지금까지 아시아 선수에게는 난공불락이었다. 1905년 시작한 호주오픈에서 남자 단식 4강에 오른 아시아 선수는 1932년 일본 사토 지로가 유일하다. 또 이제까지 아시아 국적 선수 가운데 메이저 대회에서 가장 큰 족적을 남긴 선수도 일본의 니시코리다. 니시코리는 2014년 US오픈 결승에 올라 역대 아시아 국적 선수로는 최고 성적을 기록했다. 당시 니시코리는 마린 칠리치(크로아티아)에게 0-3으로 패하면서 코앞에서 우승을 놓쳤다. 콤플렉스로 남아있긴 하지만 아직까지 어떤 아시아 국적의 선수도 메이저 대회에서 우승한 경험이 없다. 체력과 체격에서의 한계가 결과로 이어진 역사다. 아시아 국적 선수에게 남자 테니스는 끝없는 도전의 대상이다. 그 중심에 정현이 있다.
지금 한국 스포츠의 화두는 강국에서 선진국으로의 전환이다. 제도와 시스템부터 사고 체계까지 한 단계 업그레이드가 필요한 시점인데, 정현은 한국 스포츠가 추구하는 선수상에 부합한다. 그는 16강 경기에서 승리한 후 엄마뻘인 과거 스승 김일순 감독을 위로하기 위해 중계 카메라 렌즈에 펜으로 “캡틴! 보고 있나?”라는 친근한 메시지를 전했다. 이는 그동안 우리가 흔히 가졌던 운동선수의 모습과는 크게 다르다. 승부만큼이나 남에 대한 배려가 자연스럽게 녹아 있는 모습이다. 과거 우리는 승부에만 몰입해 스포츠 강국이란 소리를 들었다. 하지만 이제 승리만으로는 스포츠 선진국이 될 수 없다. 정현의 경기 태도, 유머, 소통방식 등을 통해 스포츠 선진국 선수의 전형을 보았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여러 면에서 기대하게 만드는 선수다.
전용배 단국대 스포츠경영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