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커버스토리]글로벌 금융위기 10년… 국내 30대그룹 CEO 변화는 본보-CEO스코어 공동조사
위정현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는 “금융위기 이후 기업들이 새로운 사업에 투자하지 않아 인사 적체가 빚어졌음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기업에 있어 현상 유지는 죽음을 뜻하는 만큼 부정적인 신호로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 노련한 CEO 선호
지난해 10월 말 실시된 삼성전자 인사의 키워드는 ‘세대교체’. 권오현 부회장과 윤부근, 신종균 사장(당시 직책) 등 60대 대표이사들이 모두 물러나는 대신 김기남, 김현석, 고동진 사장 등 50대가 경영 전면에 등장했다. 당시 재계에서는 삼성에서 촉발된 세대교체 파도가 국내 기업들에 빠른 속도로 확산될 것이라는 예상이 나왔다.
그러나 동아일보와 CEO스코어가 지난해 말 대기업들의 정기 인사를 반영해 집계한 30대 그룹 계열사 대표이사 통계는 이런 예상과는 달리 대표이사 평균 연령이 높아졌음을 보여줬다. 실제로 LG전자는 조성진 부회장(62)을 2015년 말 대표이사로 내정해 현재까지 회사를 이끌게 하고 있다. 삼성전자도 이상훈 전 사장(63)을 이사회 의장으로 내정해 젊은 대표이사들과 균형을 맞추도록 했다. 오세조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는 “기업은 경기가 안 좋을수록 충성심이 강한 노련한 경영자를 찾는 경향이 있다”며 “국내 기업들이 금융위기 이후 대외적인 확장보다는 내실을 기하는 수세적인 경영을 해왔다는 증거로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번 조사를 통해 대표이사들의 출신학교 지형도가 바뀌었다는 점도 확인됐다. 우선 명문고 비중이 대폭 낮아졌다. 올해 초 기준 경기고 출신 대표이사 비중은 6.3%로 전국 고교 중 대표이사를 가장 많이 배출한 것으로 집계됐다. 하지만 금융위기 직전인 2008년 초(13.8%)와 비교하면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경기고와 함께 서울 지역 3대 명문고로 꼽혔던 경복고와 서울고까지 합치면 3개 학교의 대표이사 배출 비중은 이 기간 42.4%에서 15.5%로 크게 줄어들었다. 명문고 비중이 감소한 것은 1974년 서울과 부산을 시작으로 단계적으로 추진된 고교평준화와 무관하지 않다. 대기업 요직에서 활약하던 비(非)평준화 세대들이 은퇴할 연령에 접어들었기 때문에 비중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그 대신 평준화된 다양한 학교들이 대표이사를 배출했다. 실제로 대표이사를 1명이라도 배출한 고교가 2008년 초에는 81곳이었지만 올해 초에는 101곳으로 늘어났다.
대학도 비슷한 양상이다. 이 기간 서울대 출신 비중이 34.1%에서 27.3%로 감소했다. 고려대는 15.2%에서 11.5%, 연세대는 12.5%에서 10.2%로 각각 떨어졌다. 이에 따라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등 이른바 ‘SKY대’ 출신 대표이사 비중이 2008년 초 61.7%에서 올해 초엔 49.2%로 줄었다. 그룹별로 보면 삼성그룹이 같은 기간 53.8%에서 37.5%, 현대차그룹이 45.0%에서 40.9%, LG그룹이 85.7%에서 75.0%로 각각 떨어졌다. 박주근 CEO스코어 대표는 “고교 평준화 세대가 대표이사급으로 성장하면서 과거 명문고 출신 CEO가 줄어드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며 “다만 명문대 출신이 줄어든 것은 국내 기업의 인재를 보는 눈이 달라졌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이어 “국내 기업의 경영 시스템이 어느 정도 갖춰지면서 간판보다는 실력을 중시하는 기업문화가 정착된 결과인 것 같다”고 덧붙였다.
○ 경영학과 출신 ↓, 이공계 출신 ↑
대표이사들의 대학 시절 전공은 경영학이 제일 많았다. 올해 초 기준으로 전체 대표이사의 31.7%가 경영학도 출신이다. 대표이사를 가장 많이 배출한 곳도 서울대 경영학과(전체의 7.1%)였다. 하지만 10년 전과 비교하면 그 비중은 확연히 줄었다. 2008년 초 기준 경영학과 출신 대표이사 비중은 44.7%였다. 서울대 경영학과 출신 비중도 10.1%나 됐다. 경제학과 출신 대표이사 비중도 같은 기간 17.4%에서 9.3%로 감소했다.
송진흡 jinhup@donga.com·이설·이세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