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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이광표]“아무도 보고하지 않았다”

입력 | 2018-01-27 03:00:00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한 쪽짜리 서면 보고서조차 거의 읽지 않는다고 해서 논란이 됐었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대면 보고를 받을 때는 토론을 마다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마이크 폼페이오 중앙정보국(CIA) 국장은 최근 “거의 매일 백악관으로 가서 대통령에게 대면 보고를 한다”고 밝혔다. 보고 시간은 30∼40분 정도로, 두 사람은 밤새 일어난 현안을 놓고 격렬한 논쟁을 벌이기도 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변호를 맡았던 유영하 변호사가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박 전 대통령은 국정원, 경찰, 민정수석 등으로부터 최순실 씨에 대한 보고를 받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왜 아무도 최 씨에 대해 보고하지 않았는지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원장 정례 독대를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민정수석실이 주요 기관의 정보를 모두 취합해서 박 전 대통령에게 올렸을 텐데 현재까지 밝혀진 걸로는 민정수석실이 최순실 관련 내용을 보고한 적은 없었다. 민정수석실에 올라간 국정원, 경찰 등 어떤 기관의 보고에도 최순실은 등장하지 않았다. 정보력의 부재이거나 직무를 방기한 것이다.

▷그러나 그 책임을 아랫사람에게 돌리기 전에 박 전 대통령 스스로 그런 정보 차단 상황을 자초한 것은 아닐까. 박 전 대통령은 대면 보고 자리에서 자신이 듣기 불편한 얘기가 나오면 짜증과 역정을 냈다고 전하는 이가 많다. 무시무시한 레이저 눈빛에 주눅 들 때가 많았을 것이다. 그나마 대면 보고 자체를 꺼렸다.

▷청와대를 두고 구중궁궐이라고 한다. 겹겹의 사람 장막으로 인해 보고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뜻이 담겨 있다. 오명에서 벗어나려면 대통령이 귀를 열어야 한다. 동시에 민심을 제대로 전달하는 참모들의 용기도 필요하다. 1987년 서슬 퍼렇던 전두환 정권 당시 김용갑 민정수석은 대통령 직선제 수용을 건의했다고 알려져 있다. 자기 목을 걸고 진언하는 참모, 그런 참모를 귀하게 여기는 최고지도자의 열린 귀가 필요한 건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이광표 논설위원 kplee@donga.com